정석구 편집인
한-일 관계가 최악이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반이 다 돼 가는데도 두 나라 관계는 정상회담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냉각돼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지난주 일한협력위원회 초청으로 일본을 방문했다. 나카소네, 노다, 아소, 아베 등 전·현직 총리와 야마구치 공명당 대표, 자민당·민주당·공명당 등의 국회의원, 요미우리·아사히·마이니치·닛케이·엔에이치케이(NHK) 등 주요 언론사의 간부들, 일한경제협회 임원들 그리고 한-일 관계 전공 교수 등을 두루 만나 양국 간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비록 그들의 입장에서 한 얘기였지만 일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최근 현안으로 떠오른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관련한 일본 정부의 입장은 철저히 자국 중심적이었다. 아베 정부의 집단자위권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한 교수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 이유로 센카쿠열도 방어와 미군의 후방 지원, 유엔평화유지군(PKO) 활동 지원 등을 들었다. 집단적 자위권은 보유하되 행사할 수 없다는 현재의 헌법 해석으로는 한반도 유사시 전투에 참여하는 미군을 일본이 지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게 되면 한국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나라의 피케이오가 공격을 받을 경우 일본이 그들을 돕기 위해서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주권국가로서 당연한 권리 행사라는 것이다. 일본 군국주의의 피해를 본 주변국들의 우려에 대한 고려는 듣기 어려웠다.
일본군 군대 위안부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이미 끝났다는 게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하지만 물밑에서는 다양한 해법이 모색되고 있었다. 위안부 문제 해결에 진력했다는 한 의원은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돈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 회복이라고 강조했다. 그런 차원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과적으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 안타까워했다.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한 의원은 위안부 문제는 1965년 협정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은 일이었다며 위안부가 당시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정짓고 해법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노 담화 검증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는 의원들도 적지 않았다.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비록 일부에서 그런 움직임이 있지만 크게 문제 삼을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한-일 관계 악화가 우경화 때문이라는 지적에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일 관계는 2011년 말 교토 한-일 정상회담 이후 냉각된 뒤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급속히 악화했다는 게 일본의 시각이다. 당시 일본은 민주당 정부였는데 민주당이 우경화된 정부였느냐고 반문했다.
역사인식에 대해서는 너무나 다른 다양한 의견들이 공존했다. 일제 시기를 겪은 나이 많은 세대는 그들이 저지른 ‘무례한 짓’에 대한 반성을 하고 있다며 두 나라 젊은이들은 서로 손잡고 전진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일본의 근현대사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젊은 세대는 태평양전쟁의 상대국이 어느 나라인지, 한국과 중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아베 정권의 핵심 정치인들 중에 “역사관은 나라마다 다르다”며 “공통의 역사관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하는 사람까지 있다는 점이다. 비록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었지만 자칫 서로 간극을 더 벌리는 게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총리를 지낸 한 원로 정치인은 국가 대 국가의 관계는 정상 간의 우정에서 시작해 우정으로 끝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상대방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을 정도로 돈독한 우정을 쌓으라고 두 나라 정상에게 충고했다. 그것이 각 나라의 역사를 책임지고 있는 최고 지도자의 자세라는 것이다. 국내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매몰되지 말고 이웃 나라, 아시아 그리고 인류 전체에 대한 것을 생각하라는 노정객의 고언을 두 나라 정상 모두 진지하게 받아들이길 기대한다.
정석구 편집인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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