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
“두려움을 떨쳐라. 냉소와 절망을 버리고 나태와 무기력을 혁파하라. 불가능한 꿈을 품어라. 그것이 바로 그대들의 진정한 대업(大業)이다.” 최근 종영된 <한국방송> 사극 <정도전>의 마지막 회상 장면에서 정도전이 던진 말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 청년들에게 과연 ‘대업’은 무엇일까?
지난달 말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청년 창업지원 프로젝트 ‘온드림’의 최종 오디션이 열렸다. 올해로 3년째를 맞는 이 대회에는 해마다 400여명이 참가한다. 대부분 정부의 청년 사회적기업 육성사업을 통해 1년간 창업의 꿈을 키워온 이들인데, 추가적인 후원을 받아 ‘사회혁신 기업’을 창업하는 게 목표다.
오디션에서 발표된 프로젝트는 참신하고 구체적이었다. 올해의 대상은 ‘셰어 타이핑’ 플랫폼을 선보인 팀한테 돌아갔다. 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을 돕는 실시간 자막제공 사업 아이디어다. 소리로 전달되는 정보를 실시간 자막으로 구현하는 서비스로, 수업과 세미나 등 다양한 상황에서 속기사가 타이핑한 내용을 스마트폰 앱을 통해 자막으로 실시간 전달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 팀의 리더는 청각장애 청년이다. 그는 “누구나 소리 정보를 얻는 데 어려움이 없는 환경을 만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이밖에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독서능력을 키워주는 독서 보조기기를 개발한 청년들, 지역의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상인 동아리’ 활동을 도우면서 공동 가게를 운영하는 젊은이들도 있었다. 이 시대의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청년들의 열정과 꿈을 듬뿍 느낄 수 있었다.
지난주에는 사회혁신을 꿈꾸는 아시아 청년들을 여럿 만났다. 일본과 필리핀, 타이,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에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적 기업을 직접 운영하거나 돕는 이들인데, 서울시와 한겨레신문사가 함께 연 ‘아시아 청년 사회혁신가 국제포럼’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을 찾았다.
포럼에 참가한 응우옌로안(베트남)은 공정여행과 소액대출을 연계한 사업을 운영중이다. 여행자는 베트남의 농촌지역을 체험하는 여행을 하고, 그 수익을 재원으로 해당 지역 주민에게 대출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그 많은 관광 수입이 왜 지역주민들에게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까”라는 평범한 문제의식이 사업의 시작이었다. 빈곤층 여성들이 짠 직물로 수공예 패션 제품을 만들어 파는 루이스(필리핀)는 “쓰레기 매립장 근처에 사는 여성 수공업자들”과 함께 일을 한다. 지금은 필리핀 외에 영국·미국에도 제품을 판매하고 있지만 “대량생산과 아웃소싱은 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원칙이다. 출산 여성을 대상으로 산후케어 프로그램을 운영중인 요시오카 마코(일본)는 자신이 심각한 산후 우울증을 겪은 뒤 “산모의 건강 회복을 돕는 것은 공공서비스의 하나”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한다. 서울에 온 이들 10여명의 청년 혁신가들은 400여명의 청중과 함께한 토크쇼에서도, 그리고 포럼이 끝난 뒤 저녁 자리에서도 끊임없이 자신들의 꿈과 희망을 이야기했다.
이 시대 사회문제를 풀어내려는 청년들의 ‘대업’은 곳곳에서 피어나고 있다. 사람들이 좀더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자는, 이를 위해서는 국가와 시장 이외의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공동의 에너지가 그 원천이다. 청년들이 도전하는 사회혁신의 발걸음은 아직 미약하다. 하지만 정도전의 말처럼, 이들은 두려움, 냉소와 절망, 나태와 무기력을 떨쳐낸 청년들이다. 안정적인 직장과 가정을 갖기도 벅차다는 이른바 ‘삼포 세대’이기에 이들의 열정과 꿈은 더욱 소중하다. 불가능한 꿈을 현실로 바꾸고 있는 이 시대의 진정한 청년 대업가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 hsl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