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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이병기와 ‘도로 안기부’ / 김보근

등록 2014-06-29 18:37수정 2014-06-30 10:06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국가정보원 요원들이 앞장서 이병기 반대 성명이라도 내야 하는 것 아닐까.’

이병기 국정원장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들을 지켜보면서 든 생각이다. ‘북풍공작’과 ‘차떼기 정치자금 전달’ 등의 전력에 아파트 특혜 분양, 아들 병역 특혜 등 새 의혹들이 매일 덧붙여지고 있다. 이 후보자가 원장이 되면 남재준 전 원장보다 국정원의 명예를 더 떨어뜨릴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국정원이 망가지면 누가 가장 큰 피해자가 될까. 우리 국민이다. 일본의 고노 담화 무력화 시도가 한 증거일 수 있다. 일본은 외교상 불문율을 깨고 1993년 고노 담화 작성 과정에서 이뤄진 한국과의 외교적 조정 과정을 낱낱이 까발렸다. 그 ‘만용’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일본은 아마 남재준 전 원장의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과정을 지켜보면서 ‘남한 정보기관은 국가 정상 사이의 대화 내용도 버젓이 정치에 이용하는데, 외상 담화 관련 협의쯤이야…’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국정원이 더 망가지면 국민들의 피해도 더 커지겠지만, 국정원 요원들이 입게 될 불명예 또한 매우 심각할 것이다. 특히 이 원장 체제가 되면 국민들은 국정원을 ‘도로 안기부’로 여기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무엇보다 1997년 대선 때 안기부 2차장이었던 이 후보자가 당시 일어난 ‘북풍공작’에 연루돼 있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북풍공작’은 이 후보자가 관할하던 203호실(해외공작실) 요원들이 재미동포를 돈으로 매수해 기자회견을 연 것이다. 이 기자회견에서 안기부는 “김대중 대통령 후보가 북한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허위사실을 발표했다. 이 후보자는 자신은 이 공작을 몰랐다고 주장하지만, 직속 부하가 5명이나 구속된 큰 공작을 그가 몰랐을 리 없다는 주장들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고 있다.

‘국정원’에 입사한 젊은 요원들은 ‘도로 안기부’가 어떤 것인지 잘 모를 수 있다. ‘도로 안기부원’이 되는 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동창회 등 공공이 모이는 장소에 얼굴 들고 가기 힘들게 되는 것’이다. 1980년대 말 안기부원이 된 젊은 친구가 동창회에 참석하려다 당한 봉변이 지금도 생생하게 잊혀지지 않는다.

갓 대학을 졸업한 동기들이 모여 각자의 사회 진출을 축하하며 왁자지껄하다 갑자기 조용해졌다. 뒤늦게 합류한 친구 때문이다. 모두 싸늘한 시선으로 그 친구를 바라보다 급기야 한명이 “너 이××, 니가 어떻게…”라며 들고 있던 맥주를 끼얹었다. 국가 정보요원이 됐다며 우쭐했을지도 모를 그 친구는, 머리부터 맥주를 뒤집어쓰고는 앉지도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게 당시 국민들이 안기부원을 대하는 태도였다. 모든 안기부원이 직접 맥주세례를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맥주보다 더욱 차가운 시선을 받아내야 했다. 왜 안 그렇겠는가. 당시 안기부는 민주주의를 염원했다는 이유만으로 멀쩡한 사람을 잡아다 고문하고, 무고한 이들을 간첩으로 조작하던 곳이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이병기 후보자가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는 ‘북풍공작’ 등을 주도했다.

안기부가 국정원이 되고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등에 기여하면서 맥주세례를 당했던 젊은이도 ‘국정원 요원’이 돼 동료들과 화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원세훈·남재준 원장 시절 댓글사건과 간첩조작사건 등으로 국정원을 보는 국민의 시각이 다시 얼음맥주만큼 차가워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 북풍공작 의혹 국정원장 후보라니….

그러니 ‘도로 안기부원’이 안 되려면, 국정원 요원들이 앞장서 ‘이병기 반대’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겠는가.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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