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무총리가 사표를 낸 지 2개월 만에 원점으로 회귀했다. 보따리 싼 총리를 주저앉힌 것이 후임자를 당장 찾지 못해서라고 하니 그 유임도 임시방편일 터이다. 참으로 전례없는 비정상적 파행이 아닐 수 없다. ‘창조’를 표방한 정권에서 창조의 극치는 창조경제가 아닌 창조인사에서 가시화되고 있다.
새삼 확인한 것은 국무총리란 자리의 무게없음이다. 그동안 대독총리, 방탄총리란 비아냥을 받아왔어도 국정 제2인자라는 법적 후광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두 달이나 식물총리 아래 국정이 돌아간 걸 보니 총리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자리임이 확증되어 버렸다. 세월호 참사에 책임지겠다며 사퇴한 총리가 유임한다면 그 책임은 어디로 갔는가. 그저 보따리 싸라면 싸고 풀라면 푸는 정홍원 총리의 모습에는 측은한 마음까지 생길 지경이다.
다음 총리 후보를 물색하느라 내부 검토한 인사가 20여명에 달한다는데, 내부검증에서 탈락하거나 한결같이 고사한단다. 청문회 거부감 탓으로 돌리지만, 단 한명의 후보도 제시하지 못한 데는 다른 이유도 있는 성싶다.
일차적 문제는 대통령의 ‘수첩’에 있다. 그 수첩에서 골라낸 인사 중 상당수가 청문회에 이르기 전에 여론검증에서 낙마했다. 문제의 수첩은 정치인 박근혜의 수십년의 인맥과 관계망의 압축판일 텐데, 이번 인사참사는 정치인 박근혜의 인맥 내지 관계망에 중대한 하자가 있음을 시사한다. 계층과 지역에서 극히 편중된데다, 직업적으로는 육사 출신과 검사를 중용했던 1970년대식 ‘육법당’의 재현이다. 보수세력을 포괄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합리적 보수가 아닌 특권적 보수, 소통지향형 보수가 아닌 공격형·배제형 보수만으로 돼 있다.
수첩인사가 한계에 부닥치면 수첩 밖으로 눈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인사청문회가 이를 강제하는 면도 있다. 청문회가 도입되고 장상·장대환 총리 후보자가 낙마하자, 김대중 대통령은 야당 쪽이 거절하기 어려운 인사를 내세워 국회 동의를 얻어낸 적도 있다. 이렇듯 대통령의 인사권은 독단전횡의 도구가 아니라, 국민여론을 존중하고 정치권과 소통하는 자세로 신중하게 행사해야 할 권한이다. 그런데 확장형 소통을 시도조차 않은 채, 축소편향의 인사만을 고집하니 인사 참사와 파행이 그칠 날이 없다.
이번 총리의 원점회귀적 유임 처사는 최악의 선례로 오용될 수도 있다. 앞으로 총리, 장관 후보자들이 계속 등장할 텐데, 그들이 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하면 더 나은 새 후보를 찾는 노력을 하는 게 아니라, 현직 각료의 유임으로 낙착된다고 상상해보라. 그러면 각료 교체를 통해 책임을 묻거나 행정쇄신의 전기를 마련해온 정치관례까지 흔들린다.
하다 안 되니 뜻밖에 인사청문회 제도를 탓하기도 한다. 그동안의 청문회 과정에 적지 않은 문제점이 노출되었음은 사실이다. 전문성과 헌신성, 국민과의 소통능력을 중심으로 심사해야 함에도, 그 전 단계인 개인적 도덕성 검증에 치우친 느낌도 없지 않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청문회 탓에 앞서 일차적인 여론검증도 통과 못할 인물을 내놓는 인선 과정의 문제점을 자체점검하고 개선해야 할 것이다. 현행의 인사방식을 고수한다면, 그에 맞서 여론과 국회의 검증은 더욱 활성화되는 게 당연하다.
거듭된 실패를 교훈삼아 앞으로 좀더 나은 인사를 기대할 수 있을까. 수첩인사, 비선인사, 돌려막기 인사에다 이번의 도루묵 인사까지 겪고 보면, 그런 기대란 포기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통령 인사를 주시하고 비판하는 까닭은 이 나라가 대통령과 그 측근의 나라가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올해 초 대통령은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비전으로 일련의 개혁작업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런 국정 비전이 정작 적용되어야 할 곳은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다. 정상적인 과정조차 비정상화하고, 심지어 비정상을 일상화하는 인사 난맥과 참사만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서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