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집회에서 노동자들이 생목소리로 쥐어짜는 듯 외치며 발언하는 모습을 한 젊은 활동가는 ‘구리다’고 표현했다. 노동운동 방식이 그렇게 구태의연해 사람들이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맞는 말’이 틀리는 경우를 보았다.
현대자동차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로 오랜 기간 활동해 온 최병승씨를 노동대학 종강수업 강사로 초청했다. 건네준 마이크를 탁자 위에 내려놓더니 그는 첫마디부터 호소하듯 높고 큰 생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저 목소리로 어떻게 두 시간 동안 강의를 하나’ 덜컥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에 얽힌 눈물겨운 이야기를 그 중심에서 직접 이끌었던 사람으로부터 직접 듣는 생생한 강의는 참석자들이 두 시간 내내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는 상투적 표현을 실감하는 놀라운 체험이었다.
강의 도중에 그는 “이 사건으로 ○○○명이 해고됐구요, ○○명이 구속됐구요, ○○ 동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구요, ○○는 분신했다가 겨우 살아났구요”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했다. 자신이 다니던 회사 현관 앞에서 지난 4월30일 스스로 목을 매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전주 신성여객 버스노동자 진기승씨의 이야기를 끝으로 강의가 끝났다.
한 수강생이 강사에게 첫 질문을 했다. “그렇게 죽음을 선택했다가 살아난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요?” 그가 답했다. “계속 활동하는 분들도 계시구요, 활동을 접고 떠난 사람도 물론 있구요, 이거 얘기해도 되나… 좋은 여성을 만나서 연애하는 동지도 있구요….”
계속 죽음에 관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던 노동자들이 목적을 달성했다고 평가하느냐?”고 묻기도 했다. “목적이 꼭 있어서 죽음을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아무것도 풀리지 않으니까… 어떻게 좀 해봐야 되겠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봐요. 저는요, 그 사람들이 죽어서 목적을 달성하는 것보다 살아서 작은 기쁨을 누리는 게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죽어버린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노동자가 죽지 않는 게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가혹할 정도로 죽음에 관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어떤 죽음이 가장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을 한 사람도 있었다. 진행을 맡았던 나는 하는 수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맙시다. 이 동지가 지금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답하고 있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기가 상당히 힘든 상황입니다. 왜냐하면… 이분도 스스로 목을 맸다가 살아난 경험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그러자 질문을 한 사람이 또 말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절실한 문제일 수 있는데 그렇게 잘라버리시면 곤란하죠.” 다른 수강생이 큰 소리로 말했다. “저는 그 설명 듣고 싶지 않습니다.” 그날 강의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노동조합의 책임 간부이기도 한 그 집요한 질문자가 혹시 스스로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됐다.
강사를 기차역까지 배웅했다. 플랫폼에 같이 앉아 그는 “전화기 배터리가 다 떨어졌지만, 다행히 기차 객실과 좌석 번호를 외우고 있다”며 웃었다. 그가 떠난 뒤, 새벽녘에 문자가 들어왔다. “집에 무사귀환했습니다. 배터리가 꺼져서 몰랐는데 전화기를 켰더니 전북 시내버스 진기승 동지가 결국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슬픈 밤이 되었습니다. 건강하시고요, 저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눈물이 났다. 진기승씨는 자결을 시도한 바로 다음날 부당해고 판결을 받았지만 결국 그 사실을 모른 채 세상을 떠났다. 최병승이라는 섬, 진기승이라는 섬… 이렇게 고립돼 싸우는 섬들을 이어보자고 만화가 7명과 르포 작가 7명이 모여 책을 한권 냈다. <섬과 섬을 잇다>. 이 책을 사는 것도 쌍용차, 밀양, 재능교육, 콜트콜텍, 강정마을, 현대차 비정규직, 코오롱 등 7개의 외로운 섬을 잇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표창원 “50~80대 선배분들, 다음 세대를 위해 악영향만은 끼치지 말아주십시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