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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홍섭의 물바람 숲] ‘돌아온 탕아’ 미국, 거꾸로 가는 한국

등록 2014-06-11 18:21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기후변화 대응은 다이어트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기후변화에 맞서자며 이런 비유를 했다. 살을 빼려고 운동을 하고 음식을 조절하면 의도했던 체중 감량 못지않게 건강 증진 등 부수효과를 거둔다. 마찬가지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화석연료 의존을 줄이면 온실가스 감축뿐 아니라 대기오염 감소와 시민 건강 향상 등 얻는 것이 많다.

그러나 국제적인 기후 대응은 지지부진하다. 1992년 기후변화협약이 채택된 뒤 협상만 20여년째 계속되고 있다. 세계가 참여하는 기후체계는 나오지 않고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2006년 중국에 자리를 내줄 때까지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이면서도 중국 등 개도국의 참여 없이는 감축에 나서지 않겠다고 버텼다. 그 바람에 교토의정서가 무력화되는 등 기후변화에 맞서려는 노력은 번번이 물거품이 됐다. 기후변화 전문가들은 이를 가리켜 ‘잃어버린 20년’이라고 한다.

그런데 최근 미국이 변했다. 게다가 ‘돌아온 탕아’ 미국은 세계 온실가스의 4분의 1 이상을 내뿜고 있는 최대 배출국 중국마저 돌려놓을 모양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일 가동중인 석탄 화력발전소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를 2030년까지 30% 줄이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석탄 화력은 미국 온실가스 배출의 40%를 차지한다.

오바마 대책의 표적은 기후변화가 아니라 대기오염이다. 미국 행정부는 상원의 반대로 기후변화법을 만들지 못해 왔다. 의회를 우회하기 위해 이산화탄소를 대기오염물질로 간주해 환경보호청으로 하여금 이를 삭감하도록 명령한 것이다. 대법원도 인정한 편법이다. 매사추세츠주 등 일부 주가 ‘이산화탄소는 건강에 해로운 오염물질’임을 인정하라고 정부에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석탄업계는 물론 그 입김이 센 주에서 반대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일자리가 준다’ ‘전기요금이 인상된다’ ‘산업 경쟁력이 떨어진다’ 등등. 그러나 천연자원보호협회(NRDC)의 분석 결과가 더욱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석탄을 줄이고 에너지 효율화와 재생에너지 개발을 추진하면서 2020년까지 27만개의 일자리가 생기며, 석탄 사용이 줄면서 미세먼지 등 오염물질이 줄어 6600명의 조기 사망자를 막고 15만명의 어린이가 천식에 걸리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북극곰이나 남태평양 섬나라의 운명이 아닌 자기 나라 가난한 아이들의 천식을 줄이겠다고 나선 오바마의 전략은 일단 성공적이다. 쏟아지는 셰일가스로 석탄 사용이 이미 줄고 있는 국내 여건 덕을 봤다. 또 중국을 온실가스 감축 대열에 끌어들이는 효과도 냈다.

연초부터 ‘기후변화와 관련해 미국과 중국 사이에 모종의 합의가 있는 것 같다’는 소문이 돌았다. 지난달 서울을 방문한 어니스트 모니즈 미국 에너지부 장관도 “내년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를 낙관한다”고 이를 수긍했다. 공식발표는 아니지만 오바마의 발표 이튿날 중국의 기후변화 고위 당국자는 2016년 시작되는 새 5개년 계획 때 탄소 배출량의 상한을 정할 예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중국이 기후변화에 본격 대응하게 된 것도 미국처럼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서다.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42%를 차지하는 미국과 중국이 나서면 기후협상은 급물살을 탈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기후변화 대응은 천하태평이다. 최근 탄소 배출권 거래제와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 도입을 둘러싼 논란만 봐도 그렇다. 산업계가 당장 눈앞의 이해관계에 급급해하는 건 그렇다 치자. 그러나 관계 부처 협의를 모두 끝내고 기업에는 유예기간까지 준 뒤 이제 시행을 코앞에 둔 정책에 대해 산업·경제 부처가 마치 제도 무산을 부추기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다이어트에 성공한 이들은 자신감이 높아지고 성격도 밝아진다. 당장은 고통스러워도 탄소 의존 경제의 체질을 바꾸면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 시민의 건강을 얻는다. 모두가 앞으로 가는데 세계 7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인 우리만 뒤로 가려는 것 같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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