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6자회담 재개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남북이 6자회담을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남북은 6자회담 등을 포함한 여러 협상의 최종 목표가 ‘한반도 비핵화’라는 데서는 일치된 의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일치하지 않는다.
남한은 ‘북한의 핵 개발 계획 제거가 바로 한반도 비핵화’라는 논리다. 이에 따라 지난 6월2일 남한 6자회담 수석대표인 황준국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미국 워싱턴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6자회담 재개의 선결조건으로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을 제시했다. “비핵화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 상대와 대화하는 것은 의미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북한은 ‘조선반도 비핵화에는 미국의 핵 위협 제거도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북한의 리수용 외무상은 지난 5월28일 알제리 수도 알제에서 열린 비동맹운동 외무장관회의에서 “미국과 남조선 당국이 반공화국 압살책동과 핵전쟁연습을 더욱 노골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올해 치러진 키리졸브훈련(2월24일~3월6일)과 독수리훈련(2월24일~4월18일)에서 처음으로 북한 핵에 대한 ‘맞춤형 억제전략’이 사용된 데 대한 반발과 비판으로 읽힌다. 지난해 10월2일 서울에서 열린 제45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 발표된 맞춤형 억제전략은 ‘북한이 핵·미사일 공격 징후를 보이기만 해도 북한을 선제공격’할 수 있도록 했다. ‘공격 징후’라는 전제가 있지만, 북으로서는 ‘선제공격’을 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
6자회담의 최종목표는 ‘핵에 대한 공포로부터 남북한이 해방’되는 걸 게다. 그렇다면 회담의 성공을 위해서는 그 공포의 실체를 파악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만 올바른 협상전략을 세우고, 협상의 성과물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핵에 대한 남한 사회의 공포’는 우리가 직접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리고 이것을 해소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목표다. 그런데 북한이 느끼는 핵 공포는 어느 정도일까. 북이 얘기하는 ‘미국의 핵 위협’은 단순한 반미 선전일까, 아니면 실제가 있는 것일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적어도 김일성 주석의 발언을 통해 보면 북한이 핵 공포를 느낀 기간은 남한보다 길다는 점이다. 남의 ‘북핵 공포’는 1990년대 이후 경험한 것인데, 북은 한국전쟁 직후부터 핵 공포를 얘기해 왔다.
김 주석은 1958년 2월8일 “미제국주의자들은 일본에 있던 ‘유엔군사령부’를 남조선에 옮기고 원자무기를 끌어들이고 원자공격전 연습을 하고 있다”(<김일성 저작집> 12권, 조선인민군 제324군부대관하 장병들 앞에서 한 연설)고 비판한 이후 줄곧 한반도에서의 핵전쟁 위험을 경고했다. 미국이 일본에 배치했던 전술핵무기를 일본의 반핵 투쟁에 밀려 1957년 한국으로 옮긴 직후였다. 특히 1970년대 후반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시작된 이후 남한에 있던 ‘1천여기에 가까운 전술핵무기’가 북에 대한 공격용으로 쓰일 수 있다는 데 대해 공포심을 드러냈다.
물론 이 핵무기들은 소련 해체 뒤인 1991년 9월27일 미국의 철수선언과 함께 한반도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북이 핵 공포를 느낀 또다른 축인 ‘한-미 군사훈련’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협상은 모든 참여자의 요구가 맞물릴 때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 하반기에 진행될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 때도 ‘맞춤형 억제전략’은 적용될 것이다. 6자회담이 재개의 문을 넘어 성공하기 위해서는, 남과 북의 핵 공포를 함께 올바로 계산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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