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소장
6·4 지방선거가 바짝 다가왔다. ‘세월호’ 이후 첫 선거다. 민심은 어떻게 나타날까? 많은 이들이 대한민국 역사는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고 했다. 정말 그렇게 될까? 그렇다면 이번 선거는 세월호 이후 ‘다른 대한민국’의 정치적 변곡점 또는 그 서막이 될 것인가?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우리 사회의 민심은 “대한민국호가 더는 이대로는 항진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다른 대한민국을 위해선 숱한 난제들이 우리 앞에 쌓여 있다. 하나하나 풀어야 할 것이나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것부터 꼽자면 관료체제 개혁일 것이다. 더는 아이들을 비롯해 우리의 운명을 몇몇 관료들의 결정에 맡겨둘 수 없기 때문이다.
기실 세월호 이후 우리 사회에서 가장 회자된 어휘 중 하나가 ‘관피아’다. 모피아, 해피아, 원피아 등 종류도 많지만 법과 규칙을 깨뜨리고 사익을 추구하거나 대변한다는 점에선 매한가지다. 지난 19일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관피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한 뒤 검찰이 18개 검찰청에 특별수사본부를 꾸렸다는 소식도 들린다. ‘관피아’는 민관유착의 뿌리를 뽑고, 공직윤리를 바로세우기 위해 응당 벌주거나 내쫓아야 한다. 그런데 관료 문제에 대한 시선이 ‘관피아’에만 집중돼선 곤란하다. 안 된다. 이는 문제 해결의 핵심을 놓치거나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관피아’는 이른바 ‘김영란법’을 서둘러 통과시키기만 해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정부 부처 출입기자를 오랫동안 한 경험으로 볼 때, 더 큰 문제는 ‘관료조직에 의한 독점적 의사결정 구조’다. 이는 폐쇄회로에서 이뤄지는 비민주적이고 독단적인 의사결정을 말한다. 이들 결정에는 관피아로 인한 것도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 아니다. 보도자료, 정부안, 의원입법안, 때로는 시행령, 시행규칙, 고시 등으로 다양하게 얼굴을 내미는 그들의 결정에는 시민들의 삶의 질과 생명, 안전과 직결되는 사안도 부지기수로 포함돼 있다. 그런데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일상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며, 언론과 시민단체가 눈을 부릅떠 지켜봐도 밀실과 수면 아래서 이뤄지는 그들끼리의 결정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국회조차 논의 과정에서 배제되기도 한다. 세월호 대책만 놓고 봐도 그렇지 않나? 졸속이란 평가를 받은데다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관료조직 내부의 역학관계에 의해 뒤틀리기까지 하는 추태를 보이지 않았나? 이런 원인은 비민주적이고 독점적인 정책 결정과정 및 구조와 무관치 않다. 세월호 정책 결정 과정에는 유가족도 없었고, 시민도 없었다. 국회조차 안중에 없었다. 오직 대통령과 관료 등 행정부 내 그들만의 결정이 있었을 뿐이다. 민주주의 성패는 관료체제가 낳는 병폐, 곧 “비밀주의, 형식주의, 획일주의, 번문욕례, 선례답습, 법규만능, 창의 결여, 직위 남용” 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과도한 의사결정력으로 국민에 봉사하기보다는 상사와 조직, 사익에 봉사하는 관료와, 공화국의 주인으로서 마땅히 행사해야 할 권리를 행사 못하는 시민’이란, 전도된 관계 속에선 ‘다른 대한민국’은 가능하지 않다. 정책 결정과정과 구조는 모름지기 국민에 의해 결정되도록 짜여야 한다. 그러려면 정책 결정과정이 투명해야 하고 공개되어야 하며, 그 과정에 시민들의 참여가 적극 보장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가장 숙고해야 할 대목은 어떻게 이런 시스템이 가능할 것인지, 누가 그렇게 만들 것인가다. 관료조직 스스로는 결코 이런 시스템을 만들지 않는다.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소장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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