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4월16일 이후 우리 맘속에선 봄이 사라졌습니다. 세월호의 인명참사도 슬프고 아팠지만, 한명도 구조해내지 못한 총체적 무능력에 깊이 절망하고 분노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이번 지방선거를 맞게 됩니다.
이번 선거는 대선, 총선과 달리 지방선거입니다. 정치적 심판으로서의 성격이 약하지 않으냐고 하겠지만, 정치권은 전방위로 선거를 기획하고 개입합니다. 국정 심판이라는 선거의 본질이 지방선거에도 세차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민심의 흐름에 귀막고 있던 청와대가 조금 달라지는 듯도 합니다. 국정원장과 안보실장을 교체하고, 관피아 척결도 부르짖습니다. 총리 후보도 전격적으로 사퇴시키고, 막강한 김기춘 비서실장의 거취까지 떠보고 있습니다. 대통령과 정권 담당자들이 확실히 바뀌었을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지난 대선 때 그토록 경제민주화와 기초복지를 확약했건만, 선거가 끝나자마자 휴지통에 던져버리고도 태연했던 정권입니다. 지금도 돌출하는 막말 행진 속에서 속내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변화의 외양을 띠는 이유는 단 하나, 선거가 코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거칠 것 없는 정권도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해서는 온갖 코스프레, 정치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투표하려 해도 막상 뽑을 사람이 없다는 말도 자주 합니다. 그러나 투표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누구를 뽑는 투표 행위는, 다른 누구를 뽑지 않겠다는 배제적 심판 행위이기도 합니다. 최선을 고르긴 어렵지만, 최악을 분별하고 걸러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물론 가능한 한 최선을 고르려는 노력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소간 이기적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공동선을 위해 애쓴 노력들이 있다면 가점을 줄 일입니다. 하나의 오점으로 전부를 매도하기보다는 각 후보의 장단점을 비교하며 골라야 합니다. 사람을 제대로 고르기 위해서는, 시장에서 상품을 고르는 데 쏟는 정성보다 훨씬 더한 정성을 쏟아야 합니다.
모든 후보는 공약을 냅니다. 공약을 읽다 보면 신나는 미래가 펼쳐집니다. 그러나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변질된 역사가 되풀이되다 보니 공약 자체를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정색하고 “지킬 만한 공약만 모았다”고 했지만, 당선되자마자 핵심 공약부터 폐기한 박근혜 대통령의 예를 보면서 공약에 대한 냉소감은 더해졌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나요. 공약을 이행할 후보의 사람됨에 초점을 맞추는 게 더 낫겠습니다. 한 사람이 살아온 길이야말로 앞으로 살아갈 길에 대한 신뢰성 있는 지표가 됩니다. 치열한 선거과정에서 얼마나 인간적인 품위와 상대방에 대한 존중심을 보여주는가도 하나의 평가항목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4월16일 이후 우리는 수없이 눈물을 흘렸고, 또 많은 눈물을 대면했습니다. 눈물의 가치와 진정성도 한번은 짚어볼 때도 된 것 같습니다. 어려운 이웃과 함께 흘리는 연민과 공감의 눈물은 소중합니다. 그러나 치밀하게 연출된 눈물, 가족과 측근의 문제로 흘리는 눈물도 있습니다. 인간적 눈물과 선거용 눈물은 차원을 달리합니다. 그러니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 누구와 함께 울었던가를 함께 살펴야 할 것입니다. 감성적 공감과 함께, 이를 현실적 정책의 추진 동력으로 연결시키는 자세와 역량을 갖고 있는가도 아울러 살펴봐야 합니다.
세월호를 통해 확인한 것은 관련자들의 비리와 부패,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경시, 정치·행정의 총체적 무능력입니다. 이러한 비극을 보면서 도처에 유사한 비극의 요소들이 내재해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라앉은 ‘대한민국호’를 지역적 차원에서 바로잡고 안전한 항해를 이끌어갈 선장과 항해사를 제대로 뽑아야 합니다.
그 결정적 관건은 선거입니다. 투표는 가장 간편한 방법으로 낼 수 있는 가장 힘있는 국민의 소리입니다. 투표장에서 조용히 누르는 붓두껍의 힘은 군대의 대포 소리보다 훨씬 위력적입니다. 진짜 국민의 소리가 무엇인지를 일깨우고,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주역이 됩시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