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가공스러운 정권은 히틀러의 나치였다. 그들은 대중매체, 군대, 경찰, 사법제도, 통신, 여행, 교육제도, 종교를 장악하여 국민을 세뇌시키려 했다. 그 엄격한 통제 속에 최악의 독재가 가능했고 그에 대한 저항은 목숨을 담보로 해야 했다.
그럼에도 정권의 행태에 분노하며 결사저항에 나선 사람들이 있었다. 한스 숄, 조피 숄 남매를 비롯한 뮌헨대학교의 학생과 교수들이었다. 이들은 “백장미”라는 공동의 필명으로 나치의 만행을 폭로하며 독일 국민을 향해 인간다운 자유를 위한 행동을 촉구하는 전단을 만들어 살포했다. 본질적으로 비폭력적인 평화 지향의 운동이었다.
여섯번째 전단을 뿌리다가 게슈타포에 체포된 이들은 동료들을 보호하려는 눈물겨운 시도 속에 대다수가 자신이 단독범이라고 주장했다. 조피는 이렇게 말했다. “누구든 시작해야 할 일이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말하려던 것을 대신 한 것에 불과하다. 다른 이들은 다만 우리처럼 행동하지 못했을 뿐이다.” 나흘 만에 재판을 받은 즉시 숄 남매와 크리스토프 프롭스트는 단두대에 목이 잘렸다. 그들의 은사 쿠르트 후버 교수도 같은 운명이었는데, 부인에게는 기요틴 사용료 명목으로 남편 두달치 봉급에 해당하는 청구서가 발부됐다. 그러나 최후의 승자는 백장미단이었다. 그들의 희생은 침묵으로 나치에 동조하던 독일인들의 가슴을 두드리며 괴물 정부에 맞서는 행동에 불을 붙였다.
세월호 희생자들 부모와 친지의 항의마저 제한하고 통제하며, 끝없이 이어지는 추모의 행렬마저 탄압하려는 이 정권의 행태는 점차 나치를 닮아간다. 그것도 정권 말기에 패배를 예감하며 극단을 향하던 모습을 답습한다. “그들의 악행에 당신들의 영혼이 분쇄되어 이 정권을 제거하는 것이 당신들의 권리라는 것을, 아니 당신들의 도덕적 의무라는 것을 잊었습니까?” 이들 세번째 전단의 물음에 답한다. “아니오, 결코 아니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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