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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부당한 정부에 충성을?

등록 2014-04-30 19:04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국가를 책임지고 있는 자들이 정의롭지 못한데도 충성을 바쳐야 할까? 그것이 가당치 않다면 과연 사람들이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은 무엇인가? 이것은 고대로부터 수많은 사상가들이 관심을 기울여왔던 문제이다. 키케로, 리비우스와 같은 고대 로마의 사상가들은 ‘파트리아’라는 추상적인 국가에 충성을 바쳐야 한다고 설파했다. 그것은 공동의 자유와 선이 존재하여 법과 제도에 의해 운영되는 나라를 말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중세의 신학자들에 의해 지속되어온 그 개념은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자들에게 계승되었다. 레오나르도 브루니가 피렌체를 사랑한 것은 그곳이 자신이 태어난 장소여서가 아니라, 그곳에서는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이 명예를 추구하며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장소로서의 국가인 ‘네이션’이 아니라 공공선을 추구하는 추상적인 국가인 ‘파트리아’를 위해 혼신을 다해야 한다는 ‘애국주의’의 개념은 계몽사상가들에 의해 더욱 정제되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실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곳은 영국이었다. 정치의 기득권층과 금융권의 정경유착이 만연했던 그 시기에 일단의 급진 세력은 그것이 영국인들의 자유를 파괴한다고 비판했다. 그들에게는 사적 이익보다는 공공의 이익이 우선하는 자기희생의 정신이 살아있는 나라를 사랑하는 자들이 진정한 애국자였다. 그 대표자의 한 사람인 앨저넌 시드니는 그 명분을 위해 목숨까지 바쳤다.

왕정복고 이후 그는 국왕 찰스 1세의 처형을 옹호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교수형을 앞두고 그는 자신의 생애가 “부패한 원칙과 자의적인 권력에 맞서 인류의 공동 권리와 이 땅의 법”을 지켜온 것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진실이 반역으로 통용되는 시대”에 살았다는 것이었다.

국민으로서 우리는 어떤 나라를 사랑해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애국해야 하는가? 비감하게, 그러나 올바른 정신으로 묻지 않을 수 없는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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