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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 칼럼]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파탄

등록 2014-04-28 18:43

김지석 논설위원
김지석 논설위원
세월이 가도 잊히지 않을 세월호 사건에서 가장 우리를 참담하게 하는 것은 대피 및 구조와 관련한 무책임과 무능력이다. 선장·선원은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지만 해경·해군·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비롯한 정부도 승객의 생사를 가름하는 초기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이 사건은 어떤 정책도 역량과 시스템(제도)이 따라주지 못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아시아 재균형(rebalancing)’ 정책도 마찬가지다.

이 정책은 아시아, 특히 중국의 힘이 갈수록 커지는 역사적 상황에서 패권을 유지하고 아시아의 활력을 나눠갖기 위한 미국의 국가전략이다. 이 정책은 크게 세 영역으로 나뉜다. 군사적으로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미군 비중을 상대적으로 높게 유지하고 동맹국·동반자국 등의 안보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외교에서는 양자주의와 다자주의를 다양하게 활용해 ‘개입’을 확대하고 중국과의 관계를 잘 이끄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대아시아 수출과 경제관계의 확대를 지향하는 경제적 측면에서는 중국을 제외하고 추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성사가 최우선 과제다. 29일까지 이어지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4개국 순방도 재균형 정책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 정책은 2011년 시작 때부터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주로 역량의 측면에서다. 과중한 국가부채에 시달리는 미국은 2020년대 초반까지 수천억달러의 국방예산과 수십만명의 병력을 줄여야 한다. 시리아와 이란을 포함한 중동지역과 우크라이나 등에서 발을 뺄 수 없는 상황도 미국의 발목을 잡는다. 한마디로 미국은 이 정책을 일관되게 밀고 나갈 힘이 부족하다.

더 중요한 것은 시스템 측면의 두 가지 모순이다. 하나는 중국의 협력 없이는 성공할 수 없는 내용을 중국 압박용으로 설정함으로써 생겼고, 다른 하나는 아베 신조 일본 정권을 핵심 파트너로 삼음으로써 커지고 있다.

미국은 동남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들 나라의 경제 전망이 밝은데다 중국을 에워싸려면 이들 나라가 꼭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겪는 필리핀·베트남, 동남아 남쪽의 오스트레일리아 등과 군사협력의 폭을 넓히고 있다. 티피피 협상국에도 일본·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에다 싱가포르·베트남·말레이시아·브루나이 등이 들어 있다. 하지만 이들 나라는 이미 미국보다 중국과 더 깊은 경제 관계를 맺고 있다. 곧 이들이 중국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설정하지 않는 한 티피피는 제대로 성립하기 어렵다. 이는 아시아에서 과실을 얻겠다는 재균형 정책의 지향점과 충돌한다.

더 심각한 모순은 동북아에서 나타난다. 미국은 미-일 동맹이 재균형 정책의 중심축이라고 공언한다. 실제로 아시아에서 미국의 부족한 힘을 두루 채워줄 나라는 일본뿐이다. 일본도 미국에 호응해 미사일방어(MD) 계획에 적극 참여하고 미국과 함께 동남아 나라들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상태다. 하지만 일본이 이 정책에 적극 참여할수록 중-일 갈등이 심화하고 동북아 정세는 더 불안해진다. 과거사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 우익 정권이 미국과 발을 맞추는 것은 재무장을 완성하고 중국과 지역 패권 대결을 벌이기 위해서다. 이런 구도는 미국의 패권을 유지·강화한다는 목표와 정면으로 부닥친다.

북한 핵 문제는 이 정책의 희생물이 되고 있다. 미국이 일본을 끌어들여 중국과 맞서는 한, 특히 한-미-일 삼각동맹을 밀어붙여 대중국 대결 구도를 만들어가는 한, 북한 핵 문제는 해법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지금 미국은 재균형 정책을 추구하려고 북한 카드를 활용하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핵 문제가 더 나빠지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해법은 미국 스스로 빨리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재균형을 잡는 것이다. 그 방향은 중국 배제가 아니라 중국과의 협력 또는 대타협을 꾀하고 일본 우익과 분명한 선을 긋는 것이어야 한다. 이는 핵 문제 등 한반도 관련 사안을 평화적으로 풀기 위한 과정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며, 미국과 아시아가 함께 번영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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