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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원조 보수주의자

등록 2014-04-23 19:08수정 2014-04-24 09:35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에드먼드 버크는 특이한 삶을 산 영국의 정치가였다. 영국 자유당의 전신인 휘그당의 국회의원으로 미국의 독립혁명을 지지했지만, 프랑스 혁명에는 반대하며 오히려 당 내부에 보수주의 파벌을 만들었다. 오늘날에는 근대 보수주의의 철학적 기반을 제공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먼 아메리카 대륙에서 벌어지는 일보다는 가까운 프랑스에서 일어난 민중의 폭동이 더 직접적인 위협이리라 생각하여 프랑스 혁명에 대한 초기의 지지를 철회했을지 모른다. 어쨌든 마리 앙투아네트는 민중의 폭력에 조소를 보낸 버크의 <프랑스 혁명에 관한 고찰>에서 자신을 찬양하는 구절을 읽고 감격의 눈물까지 흘렸다.

정치 노선을 갈아타는 데 갈등이 없진 않았다. 영국에서는 휘그당 의원들이 전제군주를 내쫓고 입헌군주제를 확립시킨 명예혁명의 뜻을 보존하려고 ‘혁명협회’를 결성했다.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자 협회의 한 대표자인 프라이스 박사는 보편적인 인간의 권리란 국경을 넘어서는 것이라서 한 국가의 법보다 우월하며, 거기에 비추어 영국민은 스스로를 “특정 국가의 구성원이라기보다는 세계의 시민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연설하며 혁명의 보편적 가치를 옹호했다.

<프랑스 혁명에 관한 고찰>은 이에 대한 반발이었다. 그는 명예혁명이 영국 역사에서만 특수하게 나타난 상황임을 강조했다. 명예혁명의 결실이란 선조로부터 전수된 영국민의 유산으로서, 명예혁명의 바탕이 된 중요 문서인 <권리청원>에 있는 “국민은 이러한 자유를 물려받았다”는 구절이 근거였다. 그렇듯 구체적으로 영국적인 권리를 추상적인 ‘인권’으로 대체시키며 혁명협회 인사들이 오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포함하여 주변의 친척들까지 금전과 관련된 추문에 연루되지 않았다면 더 빛을 발할 논리였을 것이다.

그 원조 보수주의자조차 “악을 낳을 가능성이 있는 것은 정치적으로 허위이며 선을 낳는 것이 진리”라고 설파했음을 이 땅의 자칭 보수주의자들은 명심하기를.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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