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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석구 칼럼] 언론도 침몰했다

등록 2014-04-21 18:47수정 2014-05-20 16:28

정석구 편집인
정석구 편집인
여기저기서 ‘우리 사회는 기본이 안 돼 있다’고 성토하는 소리가 들린다. 세월호 선장이 제대로 대처만 했어도, 사고 후 정부가 매뉴얼에 따라 신속한 대응만 했어도 이런 초대형 참사가 일어나진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언론은 앞다투어 이번 참사의 문제점을 파헤치며 ‘대한민국이 침몰했다’고 매섭게 비판하고 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선진국이니 후진국이니 따지기 전에 이건 ‘나라도 아니다!’

그럼 우리 사회의 총체적 부실을 질타하는 언론은 여기서 예외인가? 아니다. 한국 언론은 세월호 참사를 취재·보도하면서 부끄러운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사고 직후 이유가 어떻든 ‘학생 전원 구조’라는 대형 오보를 하면서 초기 대응에 혼선을 초래했고, 이후에도 실종자 가족들의 애타는 심정과 초상권은 안중에도 없는 선정적인 낚시성 기사를 내보냈다. 이런 언론이 국민들로부터 불신과 외면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사고 현장에선 기자들이 실종자 가족들한테 멱살을 잡히는 일이 벌어지고, 인터넷 공간에선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조롱 섞인 별칭까지 나돌았다. 한국 언론은 세월호 침몰과 함께 저 캄캄한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선장이나 정부뿐 아니라 한국 언론도 기본이 안 돼 있음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흔히들 ‘언론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한다. 기본이 안 된 언론은 필연적으로 기본이 안 된 사회를 만들고 그런 부실 사회에 기생하며 공생한다. 언론이 제 기능을 잃으면 사회 또한 제 갈 길을 잃고 흔들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회가 기본이 안 돼 있다고 비난하기 전에 언론부터 기본을 갖춰나가는 게 먼저다.

정부의 제대로 된 재난 대응 매뉴얼이 없다고 비판하지만 언론도 재난 취재 준칙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한겨레>도 예외가 아니다. 현장에 급파되는 기자들은 재난자들에 대한 취재 기법과 취재 제한 대상, 그리고 영상과 사진 취재 방식 등 취재·보도 과정에서 지켜야 할 구체적인 지침을 전달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다 보니 속보 경쟁에 쫓기는 기자들은 유족이나 피해자 등에 대해 과도한 취재에 나서게 되고, 확인되지 않은 추측 보도가 난무한다. 기자협회가 사고 나흘 만인 20일에야 부랴부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재난 보도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기자들에게 배포했지만 언론에 대한 국민적 불신은 이미 극에 달한 뒤였다.

어린 학생들을 배에 남겨둔 채 먼저 탈출한 선장과 선원들의 빗나간 직업윤리를 비난하지만 언론도 얼마나 자신의 직분을 다하고 있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언론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진실 보도다. 진실이 아닌 거짓을 보도하는 순간 언론은 저질 광고지로 전락하고 사회 안정에 도움은커녕 해악을 끼치는 존재가 된다. 한국 언론은 세월호 참사에서 수많은 오보를 양산했다. 그로 인해 실종자 가족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를 혼돈에 빠뜨렸다. 그럼에도 별다른 반성은 보이지 않고 오보는 이어진다. ‘퇴선 명령을 내렸다’고 강변하는 선장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모든 책임을 현장기자 개개인에게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부정확한 정부 발표, 속보 경쟁에 목을 매는 언론 풍토, 재난 정보에의 접근 제약 등 취재 환경이 열악한 상황에서 국민이 신뢰하는 진실 보도를 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 모든 것도 결국 언론이 극복해야 할 과제다. 언제까지 외부 환경 탓만 하고 있다가는 잃어버린 국민의 신뢰 회복은 불가능하다.

한국 언론은 이제라도 겸허하게 자신을 되돌아보고 언론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언론 전반에 대한 국민적 불신은 단순히 재난 보도 준칙 정도를 만들어 해소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있다. 일부 주류언론들이 권력 감시·견제라는 언론 본연의 기능을 포기한 채 권력과 야합하고, 사회의 공기임을 망각한 채 사주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좌지우지되고, 사회 통합은커녕 사회 분열과 갈등 조장을 계속하는 한 언론에 대한 국민적 불신은 더욱 깊어질 뿐이다. 한국 언론은 이미 그런 지경으로 추락했고, 이번 세월호 참사 보도에서 이를 다시 확인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한국 언론의 참담한 자화상이다.

정석구 편집인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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