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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제르미날

등록 2014-04-09 19:12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목로주점> 이후 계속된 히트작으로 부와 명성의 정상에 오른 에밀 졸라는 1898년, 모든 것을 잃게 한 ‘역사상 위대한 소동’을 일으켰다. 스파이 혐의를 받은 유대인 포병 장교 드레퓌스 재판의 부당성에 대해 ‘나는 고발한다’라는 글을 일간지에 기고했던 것이다. 이 격렬한 공개서한으로 군부와 보수층의 미움을 산 그는 유죄를 선고받은 뒤 영국으로 망명했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사건의 진실이 알려지면서 드레퓌스는 명예를 회복했고 졸라는 지식인의 양심을 대표하는 작가로 추앙받게 되었다.

그가 사망한 뒤 추도객이 운집했다. 그들은 “제르미날, 제르미날!”을 연호했다. 그것은 북프랑스의 탄광을 배경으로 자본의 폭압에 맞선 광산 노동자들의 애환을 그린 졸라의 소설 제목이다. 민중의 저항과 자유, 정의와 행복에 관한 대서사시를 통해 그는 20세기에 가장 중요해질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미래를 예언했다. 비록 작품 속에서 주인공이 주도한 파업은 군과 경찰의 진압에 몰려 실패했지만, ‘씨앗’을 뜻하는 제목의 어원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속엔 언젠가 파업이 거둘 풍요로운 수확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1980년 4월, 강원도 사북에서도 프랑스의 탄광보다 더 열악한 조건에서 착취와 유린을 당하던 광부들의 생존을 위한 총파업이 있었다. 군사독재정권은 표면적으로 협상이라는 포즈를 취하며 항쟁을 종결시켰으나 시위대의 고난은 그때부터였다. 체포와 구금, 고문이 이어졌지만 언론에서는 투쟁 과정의 폭력성만을 부각시켰다. 사쪽의 임금 착복과 인권 탄압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사북 노동항쟁은 2005년에야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들이, 그 산하가 겪은 고초의 진상은 아직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고, 보상은 미미할 뿐이다.

당시 시위의 주도자들은 이후 다른 곳 탄광 노동자의 생활 조건이 향상된 사실에 보람을 느낀다. 그들이야말로 ‘희망의 씨앗’이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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