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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슬픈 우크라이나

등록 2014-03-26 19:11수정 2014-03-26 19:24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중세에 스칸디나비아의 해적, 바이킹은 유럽 도처에 출몰하며 무자비하게 약탈을 자행했다. 강을 타고 순식간에 침략했기에 내륙도 안전하지 않았다. ‘루스’라고 불리던 그들의 일파가 드네프르 강을 따라 남쪽으로 침입했다. 그들은 키예프를 점령하여 수도로 정하고 키예프 공국을 세웠다. 오늘날 우크라이나와 대략 일치하는 이곳에서 비잔티움 제국으로부터 받아들인 그리스 정교와 키릴 문자는 지금도 러시아인들의 정신세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루스’가 어원이 되어 ‘러시아’라는 명칭이 생겼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키예프 공국의 역사는 곧바로 러시아 초기의 역사였다.

그러나 13세기에 대규모로 세력을 확장시킨 몽골이 유럽으로 침투하면서 키예프 공국이 멸망했다. 러시아의 중심은 모스크바로 옮겨갔다.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폴란드, 스웨덴, 오토만 튀르크 등 열강이 점령하려는 각축장이 되었다. 그 와중에 원주민 격인 코사크 족은 독립을 쟁취하려 시도했으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폴란드에 대항해 독립 전쟁을 벌였으나 패배한 뒤, 코사크 족 지도자 흐멜니츠키는 러시아의 차르에게 충성을 바치는 대신 우크라이나의 정체성 유지를 보장받는 조약을 맺었다.

다음 지도자인 이반 마제파도 이전의 노선을 준수하면서 러시아와 우호 관계를 유지하려 했다. 러시아가 전쟁을 벌이면 지원군으로 참가해가며 20여년에 걸쳐 충실하게 조약을 이행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대가로 받은 것은 없었다. 폴란드가 침입해오는데도 러시아는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다. 러시아로부터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마제파는 러시아와 스웨덴 사이의 전쟁에서 스웨덴 편에 가담했다. 전쟁이 러시아의 승리로 돌아간 뒤 특히 코사크 족은 대규모 살육을 포함한 혹독한 보복을 받았다.

우크라이나의 민주화 운동을 특히 러시아로부터의 ‘독립’ 운동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데에는 이런 슬픈 역사가 담겨 있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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