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조한혜정 칼럼] 놀이를 허하라!

등록 2014-03-25 18:34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문화인류학자
어린 손자와 아침 산책을 나섰다. 등굣길의 아이들을 보는 것은 즐겁다. 손자는 신이 나 형들 틈에 끼어 운동장 쪽으로 들어가려 한다. 조끼를 입은 아저씨가 막아선다. ‘학교 보안관’이라는 완장을 차고 있다. 오랜만에 보는 완장이다. “외부인 출입은 안 됩니다.” “외부인이 아닌데요, 동네 주민인데요. 학교 운동장은 개방되어 있는 것 아닌가요?” 보안관은 아니라고 말한다. 교내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방과 후에도 아이들을 빨리 귀가시키고 운동장을 폐쇄한다고 했다.

최근 <경향신문>에서는 ‘놀이가 밥이다’라는 기획연재를 통해 쉴 권리와 놀 권리를 제한하는 학교의 행태를 집중적으로 취재했다. 송파구의 한 초등학교 6학년생은 입학 후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놀 수 있게 허락된 것은 3년뿐이었다고 했다. 2학년 땐 점심시간에 영어 공부를, 5학년 때는 청소와 보드게임을 했고 6학년이 된 올해는 담임이 운동장에 아이들이 너무 많다고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교장들은 “아이들이 가방을 멘 상태에서 사고가 나면 학교 책임이니 바로 하교할 수 있도록 지도하라”고 말하고, 사고가 나면 구성원들의 지혜를 모으기보다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설치해 해결하려는 식이다.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분위기는 아이를 놀리고 싶은 부모들까지도 수업이 끝나면 아이를 곧바로 학원 버스에 태울 수밖에는 없게 한다. 최근까지만 해도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에 놀이터에서 뛰어놀았고 도서실이나 학교의 빈 공간에 남아서 끼리끼리 놀았던 편이다. 그런데 사서 담당 교사를 더 이상 채용하지 않기로 한 2009년께부터 학교는 급속도로 안전에 강박적인 신경을 쓰는 ‘단속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지난 20일, 서울시교육청은 놀라운 발표를 했다. ‘하루 놀이시간 100분 확보 프로젝트’를 통해 ‘학생 놀이문화 활성화’를 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1교시 시작 전 10~20분과 수업 사이 쉬는 시간, 점심시간 20~30분, 방과 후 20분을 놀이를 위한 시간으로 운영하고 저학년들은 1~2주일에 한 번은 1시간 동안 주변 공원에서 놀게 하라는 세부지침까지 들어 있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을 떠들지 못하게 하는 것에 대해서도 교사 지도를 하겠다고 한다. 교육청 문건은 공부만 한 아이들이 아는 것은 많지만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며, 아는 것을 행동으로 연결시키지 못하는 ‘사이보그형’ 인간이 되거나 혼자만 놀려고 하고, 때로 심한 스트레스와 자살 충동을 느낀다는 문제점을 짚어낸다. 그러면서 재미와 자발성, 그리고 협력과 규칙을 바탕으로 한 놀이를 장려하겠다고 한다.

교육청이 ‘놀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크게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막상 누가 어떻게 해낼지를 생각해보면 아주 난감해진다. 우선 현재 교장이나 교사, 그리고 엄마들 중에 제대로 놀아본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최근 심한 입시 경쟁을 뚫고 교사가 된 젊은 교사들은 더욱 놀이에 대한 감각이 없을 것이다. 놀 줄 모르는 이들은 놀 줄 모를 뿐만 아니라 안전에 대한 강박이 심할 가능성이 높다. 단속화된 학교를 놀이가 살아 있는 학교로 전환해 가려면 학교장과 교사들부터 안전강박증에서 벗어나 자신 속의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를 회복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하루 만에 되는 일이 아니므로 이 사업을 제대로 추진하려면 서서히 시작해야 할 것이다. 잘 노는 교사들이 학생들과 의기투합해서 실험적 교실을 만들어내고, 붙박이 놀이시설이 차지한 기존의 놀이터를 창의적 놀이터로 바꾸어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를 위해 이웃에 사는 ‘놀이터 이모’와 삼촌, 형과 언니들의 지원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놀이를 살려내려면 아이들을 믿고 풀어놓아 줄 수 있어야 한다. 놀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감수/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시대의 아이들은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사회를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모험놀이터라는 것이 생겨나기도 했다.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스스로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것이다. 학교는 보호관찰소가 아니라 배움터이고, 배움은 놀이로부터 나온다.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문화인류학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내란을 일으키려다 사형당하다 1.

내란을 일으키려다 사형당하다

북한군 포로의 얼굴 [코즈모폴리턴] 2.

북한군 포로의 얼굴 [코즈모폴리턴]

[사설] 딥시크 충격, 한국도 빠른 추격으로 기회 살려야 3.

[사설] 딥시크 충격, 한국도 빠른 추격으로 기회 살려야

[사설] 반도체보조금 약속 뒤집으려는 미국, ‘불량 국가’인가 4.

[사설] 반도체보조금 약속 뒤집으려는 미국, ‘불량 국가’인가

[사설] 최상목, 내란 특검법 또 거부권…국회 재의결해 전모 밝혀야 5.

[사설] 최상목, 내란 특검법 또 거부권…국회 재의결해 전모 밝혀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