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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아름다운 여자

등록 2014-03-19 19:08

조한욱의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한욱의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베라 차슬라프스카는 국제대회 시상대의 가장 높은 곳에 22차례 올랐던 체코의 체조 선수다. 사실 그 숫자는 더 늘어나야 했다.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 셋과 은메달 하나로 주목받았던 그에게 1968년 멕시코 올림픽은 더 큰 영광이었다. 금메달 넷과 은메달 둘을 더한 것이다. 빼어난 자태로 새로운 기술을 완벽하게 연기한 그는 멕시코 올림픽에서 가장 인기 높은 선수였다.

그런데 그 경지에 도달한 과정을 보면 내면의 아름다움에 더 큰 찬탄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1968년 ‘프라하의 봄’을 겨울로 되돌리려고 소련의 탱크가 체코슬로바키아에 침공한 이후 그는 훈련할 장소와 시설을 잃는 처지에 놓였다. 그럼에도 숲에서 감자 자루로 역기를 대신하고 통나무를 평균대로 이용하며 훈련을 계속했다. 소련의 침공에 반대하는 시국 선언에 서명한 이유로 도피하는 일까지 겹쳤으나, 마지막 순간에 멕시코 여행이 허가되어 간신히 올림픽에 참가한 터였다.

경기장에서도 소련의 횡포는 계속됐다. 마루운동에서 금메달이 확정되었으나, 마지막 순간에 소련 선수의 점수가 상향되어 공동 금메달을 받았다. 평균대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되더니 이번엔 메달의 색이 바뀌었다. 시상식에서 소련의 국가가 울릴 때 그는 항의의 표시로 고개를 내리고 소련 국기를 외면했다. 자신이 받지 못한 메달에 대한 회한만은 아니었다.

그는 국민의 영웅이 되었다. 반면 체코슬로바키아의 괴뢰정부에는 눈엣가시였다. 계속하여 체코의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발언을 용감하게 토로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해외여행의 권리를 박탈해 국제대회에 출전할 기회가 봉쇄됐다. 은퇴가 강요된 것이다. 자서전 출판도 거부되었고, 발언도 통제되었다. 잠시 멕시코에서 코치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거절하면 체코에 석유 수출을 중단하겠다는 멕시코의 엄포 때문이었다. 아름다운 올림픽 여전사의 복권은 1990년 민주화 이후에야 이루어졌다.

조한욱의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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