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
대통령께서 연일 듣기에도 섬뜩한 과격한 말들을 많이 쏟아내셨다고 한다. 규제는 우리가 “쳐부술 원수”이고 “제거해야 할 암 덩어리”다. “진돗개” 근성으로 악착같이 물고 늘어져 “규제를 싹 다 들어내라.” “불타는 애국심”으로 경제를 살려라. 그렇게 품격을 찾던 분이 북조선 방송에서나 들을 법한 전투적인 말투로 듣기 민망한 말들을 막 뱉어내는 이유가 뭘까. 마음이 답답하고 짜증이 나면 말이 격해진다. 분명 무언가 우리 대통령을 좌절케 하는 게 있다. 그게 무얼까?
국민과의 철석같은 약속들 죄다 갖다 버리고 오직 관료들만 믿고 ‘경제혁신’에 모든 것을 걸었는데, 1년이 지나도록 한 것은 없지 선거는 다가오지, 만약 이번 선거에서 지면 그때부터 레임덕이니 그러면 끝장 아닌가. 얼마나 답답하고 짜증나시겠는가.
혁신 고지 정복 “3개년 계획”을 ‘반포’하시고 전국에 창조혁신부대를 주둔시켜 일사불란하게 전 국민에게 ‘혁신 동원령’을 내리면 대통령의 강력한 ‘영도력’에 국민들이 감동 받고 다 따라와 경제혁신이 술술 다 풀릴 줄 알았는데, 국민들이 감동을 먹기는커녕 마지못해 따라오는 시늉도 안한다. 게다가 심지어는 일부 보수언론마저도 이 시대에 웬 아버지 박정희 시대에나 했을 법한 ‘계획경제’냐고 한다. 내심 얼마나 초조하고 답답하실까.
분명 관료들이 그려준 그림대로 했다. 그 그림대로라면 잘돼야 하는데 잘 안된다. 관료들에게 믿고 맡기면 다 잘될 줄 알았다. 그런데 수족같이 따라줄 것 같던 관료들마저 앞에서 하는 시늉은 잘하는데 ‘내 일처럼’ 성의 있게 하지 않는다. 관료들에게 배신감이 드는 건 당연하다. 그러니 관료들을 향해 독한 말이 나올 수밖에. 요새 유행하는 말처럼 “내 속이 터져 죽어봐~야 너희들이 정~신 차리지” 하고 관료들에게 협박하시는 거다. 참 안쓰럽다.
그런데 대통령의 그 협박이 관료들에게 먹힐까? 관료들이 앞에서나 굽실거리고 있지 사실 이미 대통령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았는데.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하기 전에 ‘관료혁신 3개년 계획’부터 하라고 필자가 그러지 않았는가. 대통령이 우리 관료들의 생리를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다. 비극이다.
6개월이면 새 정부를 장악할 거라고 장담하던 노무현 정부의 관료들, ‘을’의 비애 운운하며 적개심마저 보이던 이명박도 결국 손아귀에 넣은 공무원들. 박근혜 정부라고 다를까. 박 대통령도 벌써 관료들의 농간에 놀아나고 있는 게 훤히 보인다.
박 대통령이 아는 것이라곤 규제 완화밖에 없는데, 왜 규제가 문제인지는 모르시는 게 분명하다. 규제 완화만 하면 된다고 대통령을 ‘꼬드긴’ 바로 그 관료들이 진짜 문제라는 건 모르시는 게 분명하다.
물론 잘못된 규제도 있고 용도가 끝난 규제도 있다. 그건 당연히 철폐되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규제는 정당한 목적이 있어 만들어진 것인데 그것이 “암 덩어리”가 된 이유는 그걸로 장난치는 공무원들 때문이다. 그걸 철폐한다고 규제가 없어질까. 인허가 횡포를 없애려고 신고제로 바꾸면 다 해결되나? 담당 공무원이 마음에 안 들면 신고를 안 받아주는데. 주무관청의 담당 공무원님이 상을 찡그리는데 무작정 서류를 들이밀 간 큰 업자들이 이 나라에 몇이나 있겠는가. 국민의 건강을 위한 규제라면 제대로 규정을 만들어 규정대로만 하면 되는데 담당 공무원들이 그것 가지고 횡포를 부리니 국민 건강도 못 지키고 기업들은 괴롭기만 하다. 신용정보 보호는 제대로 안하면서 괜히 금융기관들 괴롭혔다.
모든 조직은 조직의 생리에 따라 조직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권력을 가진 관료조직이야 더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정보를 장악하고 있고, 행정 수단을 독점하고 있으며, 행정 절차에 통달한 우리 관료조직은 많은 경우 스스로의 조직 이기주의에 따라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민중의 지팡이는 민중의 몽둥이가 되고, 국민의 공복은 국가의 주인 행세를 한다. 국민들을 위해 견마지로를 다해야 할 관료들이 국민들을 자신의 견마로 여기는 사회가 되었다. 규제를 통째로 다 들어내도 안 된다. 규제 완화 이전에 관료 개혁을 하라. 그것이 나라 살리는 길이다.
이동걸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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