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8일은 ‘세계 여성의 날’, 중국에서는 ‘부녀절’로 불리며 여성에 대한 서비스가 최대에 달하는 날이다. 여성근로자들만 반일근무 혹은 전일휴가가 허용된다. 캠퍼스에서도 이날은 남학생이 여학생에 대한 갖은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당일 칭화대에 붙은 이색 현수막 하나. “난 도민준씨가 아냐. 하지만 너에게 치킨과 맥주를 사줄 수 있어.” 현수막을 통해 갖은 이벤트를 벌이는 게 유행인데, 이때 단연 인기는 한국 드라마 <별그대>(‘별에서 온 그대’) 패러디였다.
그뿐인가. 중화권 최고의 인기배우들도 <별그대>에 ‘푹’ 빠져 있다. “첫눈, 도대체 치킨과 맥주는 어디에 있지?” 정우성과 함께 <호우시절>의 주인공을 맡았던 영화배우 가오위안위안이 첫눈 온 날 자신의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서 한 말이다. 판빙빙도 웨이보에 “당나라에서 온 그대~”라고 장난쳤고, 자오웨이는 “드라마가 이 정도의 품위와 수준에 달하니 꼭 ‘좋아요’를 눌러야겠어요!”라고 썼다.
중국 포털 ‘바이두’에 따르면, <별그대>를 클릭한 수는 25억을 넘었다고 한다. 텔레비전에서는 아직 방송하지 않기 때문에 피피에스(PPS), 러스왕 등 외국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사이트를 통해 시청한 횟수가 그렇다는 것이다. <중국중앙텔레비전>(CCTV)도 3월1일 ‘도 교수, 별에서 왔나?’라는 제목으로 시사프로그램을 방영해 <별그대> 열풍을 9분가량 방송했는데, “이건 드라마를 넘어서는 사회현상으로 보아야 한다”고 진단했다. 국내 언론에서도 이미 여러 차례 중국에서의 <별그대> 인기와 그와 동반한 ‘치맥 열풍’, ‘전지현·김수현 패션’ 등에 대해 보도했다.
내가 보기에도 중국에 제2의 한류 파도가 오는 듯하다. <나는 가수다>, <아빠, 어디 가> 등 연예프로그램부터 최근 드라마까지. 틀림없는 한국 대중문화의 힘이다. 하지만 대박이 났다고 좋아만 할 게 아니라, 한번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중국 시청자들이 무엇에 열광하고 왜 좋아하는지에 대해서.
싸이 열풍 때도 그랬지만, 노래든 영상이든 ‘왜 인기가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는 일은 참 어렵다. 그 답을 알면 이제까지 그렇게 많은 제작자와 감독들의 실패도 없었을 것이다. 문화를 읽는 것은 마음을 읽는 것이다. 중국 시청자들의 어떤 취향이 <별그대>에 몰입하게 만들었을까. 쉽지 않은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한번 중국 시청자들의 입장에서 몇 가지 까닭을 생각해보자.
우선 중국 시청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별그대>를 ‘한국 드라마이기 때문에’ 본 것이라기보다는 ‘좋고 재미있기 때문에’ 본 것이다. 이 지점에서 많은 비평과 보도에 오류가 있는 듯하다. 이는 김치가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이라 대접을 받는 것이지, 한국 음식이기 때문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별그대>가 한국 드라마의 기존 문법을 따르지 않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신파 요소는 최소화하면서 코믹·스릴러를 ‘사랑’에 잘 버무린 것이다. <남방일보> 2월14일치에는 “(주인공이)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하는 식의 상투적 신파를 벗어났고… 러브라인에 수사극을 버무려”라며 탄탄한 구성과 편집을 드라마 인기 요인으로 분석했다. 그러면서 한국 드라마의 주제와 장르가 최근 무섭게 다양해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특히 중국 시청자 평가 중 ‘스킵(skip)할 수 없었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미국 드라마의 강점인 탄탄한 구성과 속도감은 <별그대>의 큰 미덕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쉬친쑹 광둥미술대학 학장은 <광저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이 감독·배우가 되길 원하지만 시나리오 작가가 되길 원하는 사람은 없다”며 중국 대중문화계의 세태를 비판했다. 그는 <별그대>에 대해 언급하면서 작가의 힘과 그것이 한국 드라마의 힘임을 거론했다.
중국에서 <별그대> 현상은 한류의 힘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한류 같지 않아서 가능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한류가 한국적인 것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우리 스스로 성찰하고 있는 것인지, 우리 역시 드라마 제작의 실질적 토대인 수많은 작가와 편집·제작 종사자들을 제대로 대접하고 있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연재강명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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