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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박근혜와 이건희 누가 더 셀까? / 김의겸

등록 2014-03-06 19:03수정 2014-03-09 10:49

김의겸 논설위원
김의겸 논설위원
전자공학과를 나와서일까? 원격의료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사랑이 남다르다. 이런저런 회의에서 몇 가지 주문 사항을 내놓더니, 취임 1주년 담화문을 통해서는 “원격의료를 활성화하겠다”고 직접 천명하고 나섰다. 의사들의 파업에 기름을 붓는 꼴인데도 개의치 않는다.

처음엔 무심했단다. 인수위 때도 보고가 됐고 지난해 4월3일 기획재정부 업무보고 때도 얘기가 나왔지만 심드렁했다는 게 여권 관계자의 말이다. 그러다 5월1일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원격의료 기기를 생산하는 중소기업 사장이 대통령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현행 의료법 때문에 국내에서 판매를 못 하고 있다”는 호소였다. 확인해 보라는 박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지면서 원격의료가 본격적으로 무대에 오른 것이다.

우연일까? 아니다. 아무나 들어가 불쑥 건의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머리 좋은 공무원이 정교하게 대본을 작성했을 것이다. 대통령에게 원격의료를 입력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짜낸 것이다. 경제부처 관료들에게 원격의료는 2009년부터 숙원사업이었다. 이때 나온 ‘신성장동력 종합추진계획’을 보면 원격의료의 이름만 유(U)헬스로 다를 뿐 내용은 지금 것과 똑같다. 하지만 저작권이 관료에게 있는 건 아니다. 발원지는 삼성이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이미 2년 전인 2007년 ‘유헬스 시대의 도래’와 ‘유헬스 경제적 효과와 성장 전략’ 등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의료법 개정을 정부에 요구한 것이다. 2007년 삼성의 보고서가 표지만 바뀌어 2009년 정부 서류로 변신한 셈이다.

정부가 아이디어를 받아주자, 삼성은 2010년 바이오 제약, 의료기기 등을 포함한 5대 신수종 사업을 발표한다. 초음파 진단기 전문업체 메디슨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의료기기 사업에 뛰어들었다. 최근 선보인 ‘기어피트’도 심장박동을 재는 기능을 얹은 것으로 봐서 원격의료를 염두에 둔 작품일 게다. 삼성은 원격의료 진출에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시차가 있긴 하지만, 이건희 회장의 생각이 박근혜 대통령의 입을 빌려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공무원들이 월급은 나라에서 받으면서 충성은 삼성에 바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버지 세대와는 거꾸로다. 그땐 청와대가 결심하면 공무원들이 따랐다. 경제기획원이 5개년 계획을 짜서 재벌들에게 이것 해라 저것 해라 지시를 내렸다. 말 잘 듣는 재벌들에 돈줄을 풀고, 각종 특혜도 베풀어줬다. 그땐 박정희가 이병철을 부렸는데, 지금은 글쎄다.

그래도 국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면 문제가 안 된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으로 삼성 좋고 국민 좋을 수 있다. 그러나 의료는 생명과 건강에 직결돼 있다. 스마트폰이나 냉장고처럼 한번 써보다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기기가 고장 나거나 혈압·체온을 잘못 재서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원격의료가 필요한 사람은 몸이 불편한 노인이나 장애인들이다. 갤럭시도 쓰기 힘든 이들이 훨씬 복잡한 의료기기를 다룰 거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동네병원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수익성마저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밀어붙이는 건 국내에서 시험을 해본 뒤 세계시장으로 진출하려는 전략일 게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실험실의 모르모트가 아니다. 사람 목숨이 걸린 일인데 막무가내로 할 일이 아닌 것이다.

내가 하고 있는 생각들 중에 누가 주입시켰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생각들이 있다. 문제는 이런 생각이 자신의 생각이라고 믿고 더 나아가 신념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자신의 머릿속을 한번 점검했으면 좋겠다. 누가 나에게 원격의료를 추진하도록 원격조종하고 있는지….

김의겸 논설위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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