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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여성의 날’의 내력

등록 2014-03-05 19:15

조한욱의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한욱의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20세기 초부터 유럽과 미국에서는 여성의 참정권 요구가 커졌다. 1910년 국제 사회주의자 대회가 열리기 직전에 여성 참가자들이 모였다. 그들은 ‘국제 여성의 날’을 제정해 투표권을 비롯한 여성의 평등한 권리를 홍보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하여 1911년 3월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100만명이 넘게 시위에 참가했다. 그 이후에도 비슷한 시기에 연례행사처럼 참정권과 고용의 평등을 주장하는 시위가 열렸지만 ‘여성의 날’의 날짜가 고정되지는 않았다.

1917년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2월 마지막 일요일에 여성들의 시위가 진행되었다. ‘빵과 평화’를 연호하며 식량 부족의 해결과 1차 대전의 종결을 요구하던 여성들이 파업에 나섰다. 그런데 이것이 니콜라이 2세의 제정을 붕괴시키는 ‘2월 혁명’으로 이어졌다. 트로츠키는 “그 2월23일은 ‘국제 여성의 날’이었고 시위가 예상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혁명으로 이어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술회했다.

‘10월 혁명’으로 볼셰비키의 소비에트 정부가 들어선 뒤 혁명을 주도했던 여성 알렉산드라 콜론타이가 레닌을 설득해 그날이 기념일이 되었다. 러시아력의 그 2월 마지막 일요일이 그레고리력으로 3월8일이었다. 공산권에서 특히 기념하던 그날은 1977년부터 유엔에서 여성의 권리와 세계 평화의 날로 선포함으로써 명실상부한 국제적 기념일이 되었다. 소련이 기원임을 못마땅하게 여겨 1857년 3월8일 뉴욕에서 있었던 여성의 시위가 출발점이었다고 내세우는 주장도 있다.

오늘날에도 전세계적으로 6억 이상의 여성이 가정 내의 폭력을 범죄로 인식하지 않는 나라에서 살고 있고, 70%가량의 여성이 생애의 어느 순간엔가 물리적 폭력이나 성폭력을 경험했다고 하며, 6천만 이상의 18살 미만 소녀들이 신부로 팔려나가고 있다. 기원이 어떠했든 이러한 부끄러운 사실들이 ‘여성의 날’이 있어야 할 당위성을 말해준다.

조한욱의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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