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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 칼럼] 4자 평화회담을 시작할 때다

등록 2014-02-19 19:14

김지석 논설위원
김지석 논설위원
최근에 나온 북한 관련 보고서 가운데 눈에 띄는 게 둘 있다.

하나는 미국의 해외 군사정보를 책임지는 국방정보국(DIA)의 마이클 플린 국장이 2월11일 상원 군사위 청문회에 낸 서면 보고서다. 그는 북한 군사력과 군사 대비태세에 대해 “북한은 재래식 군사력 부족 탓에 억지 역량, 특히 핵기술과 탄도미사일을 개선하는 데 집중해왔다”며 최근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 개선도 “방어 역량과 제한적 도발 수행 능력(특히 비무장지대와 서해)을 개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은 전면적 남침을 할 역량이 없으며 핵·미사일 개발은 억지 역량 강화를 위한 것임을 확인하는 분석이다. 이런 내용은 북한이 그동안 주장해온 것이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박용석 연구위원이 16일 낸 ‘북한 경제특구의 개발 동향 및 시사점’이라는 연구보고서다. 그는 “나진, 신의주, 강령군 등 경제특구와 13개 경제개발구, 3개 관광특구, 교통인프라 등에서 발생할 수 있는 건설물량이 약 6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며 남쪽 기업이 참여할 경우의 이점으로 우리 경제 전체의 성장잠재력 제고, 해외진출 기업에 유턴 기회 제공 등을 꼽았다. 그는 5·24 조처 재검토, 남북한 고위 당국자로 구성되는 ‘경제특구 통합관리위원회’ 설치 등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제안했다.

두 보고서의 시사점은 한국과 미국의 대북 접근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전조처를 조만간 취하지 않을 경우 추가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정부 입장도 비슷하다. 두 나라가 쳐다보는 곳은 중국이다. 이미 여러 해 동안 ‘기다리는 전략’의 빌미가 됐던 중국역할론에 대한 의존이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이미 할 만큼 했다. 북한과의 관계를 더 손상시키면서까지 대북 압박을 강화할 이유가 없다. 중국이 요구하는 신형대국관계 구축에 미국이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국은 북한의 핵 포기 조건을 충족시켜줄 수가 없다.

핵·미사일 개발이 억지 역량 강화를 위한 것이라는 분석은, 북한이 억지 역량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없어지면 비핵화를 이룰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이는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2005년 4차 6자회담에서 채택한 9·19 공동성명은 검증 가능한 비핵화 과정과 대북 경협,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에 관한 직접 관련 당사국들의 협상’ 등을 동시에 진행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당시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을 명시한 것은 비핵화가 한꺼번에 성취될 수는 없으며 다른 조처들의 이행과 함께 단계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을 반영한다. 이를 무시하는 한 6자회담 재개 논의는 진전되기 힘들다. 대북압박 만능론이라는 하나의 길만 고집해서는 다른 길까지 모두 막히게 된다.

여러 길을 함께 소통시킬 열쇠는 ‘직접 관련 당사국’인 남북한과 미국·중국의 4자 평화회담에 있다. ‘햇볕정책의 설계자’로 불리는 임동원 한반도평화포럼 공동대표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시키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한반도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푸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평화회담의 동력은 우리나라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냉정하게 보자면 미국과 중국은 현상유지 세력에 가깝고 북한은 발언권이 약하다. 그래서 남북관계 진전이 더 중요해진다. 대북 경협의 활성화는 그 자체로 한반도 경제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정이면서 평화체제 논의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할 것이다. 이것이 대박으로 가는 길이다.

정부는 ‘핵·경제 병진’이라는 ‘김정은의 길’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 노선이 큰 성과를 낼 가능성은 중국·베트남이나 동유럽 체제전환국의 경우보다 훨씬 낮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김정은의 길은 ‘핵 포기-경제 발전’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이는 한반도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순조롭게 풀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오늘 시작되는 이산가족 상봉은 평화회담 개최로 가는 디딤돌이 돼야 한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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