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욱의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2005년 프랑스에서는 법 제정 하나를 두고 정치적·사회적 논란이 뜨거웠다. 집권 우파가 발의한 것으로, 자국이 식민지 아프리카에서 수행한 긍정적 역할을 교과서에 실어 역사 교육에 반영하려는 법안이었다. 식민 지배를 통한 착취, 파괴, 오염에 대한 반성을 ‘자학사관’으로 치부하는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 법이 공포된 직후 역사가 파스칼 블랑샤르는 프랑스는 물론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한 잘못된 역사 교육까지 함께 묶어 맹비난했다. 그것은 역사학계의 연구를 도외시한 파렴치한 정치적 조작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 사례는 이명박 정권이 교육과정을 개정하면서 이승만-박정희 세력의 역사적 공헌을 부각시키려고 긍정적 서술을 유도한 것과 흡사하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는 이런 배경의 산물로 특히 문제가 된 일제강점기에 대한 서술이 논리적 연결을 보인다. 일제가 우리를 근대화시켰고 이승만-박정희 세력이 그것을 이어받아 성장을 이룩했으니 그 세력의 역사적 공헌을 부각시켜야 한다거나, 이를 찬양하지 않고 과오에 대해 서술하는 것은 자학사관을 심어준다는 식의 반역사적 해석이 일치하는 게 놀랍다. 식민 지배를 받았던 우리의 경우가 더 황당하지만.
프랑스 역사학계는 그 법이 제정되자마자 즉각 폐지를 주장했다. 그들은 ‘역사의 공적 활용을 위한 감시 위원회’를 조직하고 그 법이 역사적 현상에 대한 전문 학자들의 비판적 분석 대신 특정한 가치판단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역사학이나 역사 교육이 특정 집단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도구화되는 것에 대한 강력한 항의였던 것이다. 결국 그 법은 2006년 1월31일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당시 우파 대통령이었던 자크 시라크는 “역사를 서술하는 것은 법이 아니라 역사가의 몫”이라고 역사의 성찰적 역할에 대한 이해를 피력했다. 바로 지금 여기 대한민국 대통령의 입에서 나와야 할 한마디이다.
조한욱의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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