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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강명구 칼럼] 어떤 교수와 학자를 키울 것인가

등록 2014-01-26 19:29수정 2014-01-26 21:32

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세계적 수준에서 대학경쟁과 대학평가가 진행된 지 20년 남짓 되었다. 철저한 수업준비, 논문평가 등등, 철밥통과 기득권으로 비난받던 교수 사회에도 긴장과 상호경쟁의 분위기가 자리잡았다. 세계 100위 대학, 국내 대학평가 10위 등 대학의 순위 매기기가 일상화되었다. 교육부가 앞서고, 언론들이 뒤에서 밀고, 대학을 ‘경영’하는 행정 담당 교수들이 실무를 담당해 왔다. 대학평가, 교수평가의 성과가 상당히 있었다. 고객인 학생들에 대한 배려가 크게 늘어났고, 연구비 집행의 투명성도 대단히 높아졌다. 세계적으로 경쟁하는 연구실도 여럿 생겨났다. 지금쯤 한번 대학평가 정책을 뒤돌아볼 만하다. 전체를 다 반성할 수는 없으니 여기서는 대학경쟁과 평가정책을 통해 교수와 학자가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언론학 관련 학과에 2000년부터 2013년까지 신규로 임용된 교수(서울에 소재한 언론 관련 학과 교수 165명 중에 정보가 공개된 115명)들의 속성과 연구주제를 분석해 보았다. 임용 나이 평균 39살. 남녀 차이 2살. 남성 비율 66%, 여성 34%. 여성 교수 비율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남녀 관계없이 대학 졸업 뒤 최소 10년에서 15년은 더 공부를 해야 교수가 되는 셈이다. 미국 대학 박사가 88명(78.5%), 국내 15명(13.0%), 영국 5명, 프랑스 3명, 독일 2명, 일본 1명이었다. 미국 대학에서 학위를 해야만 교수가 될 확률이 높음을 보여준다.

이들 언론학 분야 신임 교수들은 어떤 주제로 연구를 하고 있을까? 115명의 신임 교수 논문 3편씩을 뽑아 주제를 분석한 결과, 언론학을 이론·응용·실무 분야로 나눌 때, 응용 분야인 뉴미디어와 소셜미디어(16.3%), 광고 홍보(15.1%), 영상·방송콘텐츠(12.6%) 등의 분야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었고, 이론 분야인 휴먼커뮤니케이션(1.6%), 언론사상과 이론(3.3%), 언론법제(0.6%) 등의 분야는 거의 연구하는 교수들이 없었다. 저널리즘 분야에서 27편의 논문(8.7%)이 나왔지만, 대부분 뉴스프레임 분석이었고, 지난 20년간 한국 언론의 심각한 문제인 언론의 당파성, 언론·국가·시민사회·산업의 연관을 이론적 수준에서 다룬 논문은 한 편도 없었다. 지구화, 아시아의 부상이 중요한 한국 사회의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국제커뮤니케이션 분야는 9편(2.9%)의 논문이 나왔는데, 그것도 한류 관련이 대부분이었다.

언론학이 응용 분야에 집중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론·철학과 사상·역사 분야가 이렇게 과소한 상황은 독립된 분과학문으로서 정체성을 위험에 빠뜨린다. 과잉된 것처럼 보이는 응용 분야도 특정 부분에 집중이 심하게 나타난다. 미디어 테크놀로지 분야가 가장 많은 반면, 미디어 융합과 스마트 시대 산업과 시장이 필요로 하는 법제도 연구자가 한 명도 충원되지 않았다는 것은 사태의 왜곡이 심각함을 보여준다. 언론역사, 비판이론 분야에 신규 채용이 없는 것은 물론이다.

가장 큰 원인은 대학들이 평가를 의식해서 신임 교수 선발과 교수 승진 과정에서 ‘사회과학 피인용지수’(SSCI)와 영향력지수가 높은 학술지에 실린 논문을 많이 쓴 사람을 높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여러 대학에서 한글로 쓴 논문 한 편에 100점을 주고, SSCI 논문에 600점을 준다. 심지어 1000만원, 2000만원 상금을 주는 대학도 많다. 능력 있는 한국의 인문사회과학자들이 영어로 논문을 쓰고, 한국 학자들끼리는 서로 학문적 소통을 하지 않는다(실제 그런 젊은 교수들이 생겨나고 있다). 학과와 학회를 운영하는 공적 활동에 참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석학 노릇을 하기도 한다.

‘사회과학 피인용지수’는 논문을 누가 많이 인용했느냐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일 뿐, 논문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SSCI 3000여개 저널 중에 상위 20위에는 경제학·경영학 5개를 제외하고 모두 심리학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과학 여러 분과학문의 질을 평가하기에 타당치 않은 지표라 할 수 있다. 신임 교수가 이렇게 특정 분야에 몰리게 되면, 언론학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과학이 쇠퇴하게 될 것이다. 교수 사회와 정책당국의 성찰을 촉구하고 싶다.

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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