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오스카르 로메로는 엘살바도르에서 대주교로 활동하다가 자객에게 살해당했다. 사망한 지 17년이 지난 1997년, 가톨릭교회는 그를 성인으로 추대하는 절차를 시작해 지금도 그 과정이 진행 중이다. 그렇지만 이미 엘살바도르 국민은 그를 ‘성 로메로’라고 부르며 추앙한다. 그에 대한 숭배는 가톨릭교회의 문턱을 넘었다.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는 20세기의 위대한 순교자로 그를 기리는 동상이 서 있다.
그가 널리 존경받는 이유는 빈곤한 민중을 위해 헌신하면서 시대의 요청을 받아들여 단호하게 군부 독재에 맞선 실천적 삶과 죽음이 주는 감동에 있다. 대주교직에 오르기 전의 그는 전통을 지키며 말없이 기도하는 보수 성향의 성직자였다. 그 점이 당시 급진적인 해방신학자들을 견제하려던 바티칸의 눈에 들어 대주교에 서임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빈민 구제 활동을 하던 동료 그란데 신부가 살해된 사건을 통해 그는 적극적 실천의 길로 들어선다. “그가 한 일 때문에 그를 죽였다면 나도 그 길을 가야만 한다.” 전통적으로 엘살바도르의 가톨릭교회는 군부와 부유한 권력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로메로는 빈자의 편에 서서 빈곤과 사회적 부정의와 암살과 고문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군부에 무기를 지원하는 미국 정부에도 일침을 가해 미국의 군사 지원은 억압받는 자들의 인권을 침해하리라는 편지를 카터 대통령에게 보냈다. 그러나 카터는 묵살했다.
라디오 방송으로도 메시지를 전달하던 로메로는 엘살바도르의 군인들에게 신자로서 지고한 신의 명령을 따라 민중의 억압을 중지하라고 촉구했다. 그 다음날 미사를 집전하던 도중 그는 제단 앞에서 총탄에 맞았다.
염수정 추기경의 보수적 태도를 두고 말이 무성하다. 그가 어느 정당이나 이념을 대변할 필요는 없다. 다만 사제로서 소명을 잊지 말고 억압받는 “목소리 없는 자의 목소리”가 되기 바란다. 그것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길이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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