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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팔은 안으로 굽는데

등록 2014-01-16 19:10수정 2014-01-17 09:06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1893년 여름 남부 프랑스의 염전에서 일손이 부족하여 노동력을 충원하고 있었다. 당시 유럽은 전체적인 경제 위기로 구직난이 심했다. 이곳에서도 지역의 노동자들이 북부 이탈리아에서 임금을 벌려고 찾아온 사람들과 경쟁을 벌이는 상황이 발생했다. 두 집단 사이에서 사소한 다툼이 일어났다. 경찰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사태는 심각하게 악화되었다.

이탈리아인들이 지역 주민을 살해했다고 소문을 낸 부랑자들이 원인이었다. 지역 주민들 중에서도 특히 이탈리아인들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격노하여 이탈리아인들을 공격했고 인명 피해로 이어졌다. 프랑스 정부에서는 8명이 사망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지만, 이 사건을 취재한 각국의 언론마다 숫자가 달라, 한 신문에서는 사망자가 50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이탈리아에서는 당연히 반프랑스 감정이 고조되었다. 어린이를 포함하여 수백명이 희생되었다는 뜬소문에 격노한 군중은 제노바와 나폴리에서 프랑스인 소유의 전차를 불태웠고, 로마의 프랑스 대사관 유리창이 파손되어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되었다. 프랑스가 이탈리아 희생자들에게 보상하고 이탈리아는 대사관 손실을 배상하는 것으로 외교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재판은 남았다. 프랑스에서 벌어진 그 재판에서 70명이 조사를 받고 17명이 기소되었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피고인들은 모두가 그 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조차 부인했다. 결국 프랑스 배심원은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평결을 내렸고, 전원이 방면되었다. 방청객은 박수로 그 결정을 환영했다. 이 판결을 전해들은 이탈리아에서는 분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탈리아 총리는 “배심원은 어떤 나라건 똑같군”이라 말하며 혀를 찰 뿐이었다.

어느 나라건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건만, 그릇된 사실로 가득한 친일 교과서의 집필자와 그것을 옹호하는 권력자들의 국적은 어디일까?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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