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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 칼럼] ‘박근혜의 주변화’와 보수 본류의 퇴락

등록 2014-01-08 19:00

김지석 논설위원
김지석 논설위원
<사기> 연구자로 이름이 높은 중국의 왕리췬 허난대 교수는 인생에서 성공하려면 반드시 네 가지가 괜찮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선 자신의 품질이 괜찮아야 한다. 이어 다른 사람도 괜찮다고 해줘야 하며, 괜찮다고 말을 하는 사람 역시 괜찮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괜찮은 사람의 건강 역시 괜찮아야 한다. 실천력과 지속성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공식’은 정부 정책이 얼마나 괜찮은지 판별하는 데도 적용할 수 있다. 먼저 정책 자체가 괜찮아야 한다. 그 정책이 괜찮다고 하는 사람이 많이 있을수록 좋으며, 이들도 괜찮은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야 정책의 품질이 보장되고 추진 기반이 튼튼해진다. 마지막으로 집행하는 사람까지 괜찮다면 그 정책은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집권 2년차를 맞는 박근혜 정권을 살펴보자. 우선 괜찮다고 할 만한 정책을 찾아볼 수가 없다. 며칠 전 박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첫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정책 구상의 핵심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다. 방법론으로는 ‘비정상적 관행의 정상화, 창조경제, 내수 활성화’ 등 세 가지를 제시했다. 이 가운데 내수 활성화 방안은 신자유주의에 충실한 규제완화·민영화의 다른 말이다. 갈등이 불 보듯 뻔하다. 또 ‘비정상적 관행의 정상화’의 핵심에는 군사정권 때부터 이어져 온 노동배제 원칙이 자리한다. 역시 갈등 지향적이다. 게다가 국민의 절대다수는 여전히 창조경제가 뭔지 알지 못한다.

대선 당시 시대정신이었고 박 대통령도 받아들였던 경제민주화, 복지 강화, 사회통합과 소통, 전향적인 한반도·동북아 정책 등은 거의 공약을 파기하는 쪽으로 퇴행했다. 그 자리를 군사정권 식의 공안통치와 정보정치, 강압·대결정치가 차지했다. 지난 1년을 몇 개의 단어로 요약하자면 ‘종북몰이, 노골적인 반노조, 역사전쟁’ 정도가 될 것이다.

이런 정책을 괜찮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무기력하게 행동대원으로 전락한 새누리당을 제외하면, 박정희 정권 때부터 내려오는 관변단체를 기반으로 하는 이른바 아스팔트보수와 일베 등 온라인 우익이 그들이다. 또 다른 지지층은 박정희 정권에 대한 향수가 강한 고령층이다. 대통령에 대한 세대별 지지도가 지금처럼 차이가 나는 경우는 없었다. 30대 이하는 반대가 훨씬 많지만 60대 이상은 80%가 넘게 지지한다.

현 정권의 정책 집행은 일사불란을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정책 방향이 잘못돼 있고 내용이 빈약하니 일사불란은 더 큰 폐해를 만들어낸다. 최근 교사·학부모 등의 심판을 받은 역사왜곡 교과서 사태가 생생한 사례다. 여러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박 대통령이 가장 잘한 것으로 ‘원칙에 따른 엄정한 대북정책’이 꼽힌다. 대북정책은 감성적인 성격이 강하다. 북한의 잘못과 튼튼한 안보를 강조하는 것만으로 중간 이상의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구체성과 실천력 없는 통일 담론은 국민의 시야를 흐리는 알리바이용일 뿐이다.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통일 기반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북한 체제의 붕괴를 기다리는 것 외에 한반도와 관련된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은 우리나라 보수 본류의 적자다. 그의 대중적 위치가 그랬다. 그래서 집권 직후 중도통합의 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국민적 기대가 있었다. 실체는 곧 드러났다. 지금 그의 주된 지지 기반은 ‘변두리 보수’다. 이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보면 박 대통령은 이들이야말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고 있음이 분명하다. 박 대통령이 이들에게 기댄다면 마음은 편할지 모르지만 괜찮은 정책은 나올 수 없다. 보수 본류는 이미 주도권을 뺏긴 채 현실추수적인 세력으로 퇴락해가는 조짐을 보인다.

박 대통령은 박정희 정권 때처럼 밀어붙인다면 모든 게 잘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큰 착각이다. 박 대통령은 벌써부터 이명박 정권보다도 못하다는 비판이 보수세력 안에서 나오는 현실을 심각하게 여겨야 한다. 그의 실패는 보수 본류 전체, 나아가 우리 사회의 비극이 될 것이다. 박 대통령은 ‘정상화’를 말하지만 가장 먼저 정상화해야 할 대상은 바로 자신이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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