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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진보의 통일론, 보수의 통일론 / 김보근

등록 2014-01-05 19:07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조선일보> 신년기획 ‘통일이 미래다’를 흥미 있게 읽었다. 1일부터 3일까지 2~3개면씩 펼쳐 “남북이 ‘2지역, 1시장경제 체제’로 경제통합을 이루면 2050년 세계 7위 안에 드는 경제강국이 될 것”이라는 주장을 담았다.

읽기 전엔 ‘북한붕괴론 등 허황된 얘기나 되풀이하는 건 아닐까’ 하는 선입견이 있었다. <조선일보>가 남북관계 보도에서 ‘안보상업주의’로 비판받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남북의 긴장이 높았던 지난해 3월 <조선일보>는 온라인판에서 ‘B-2 전략폭격기 평양 주석궁 타격’ 등 낚시성 제목을 써 비판을 받았다. <조선일보>는 심지어 장사를 위해 위기를 조장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심심찮게 받아왔다.

하지만 이번 기획에는 나름의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편협한 흡수통일론에 머물지 않고, 남북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장기에 걸쳐 진행될 경제 통합에서 찾았다. 물론 통일 뒤 남북의 정치제도는 상당 부분 공란으로 남겨졌다. 그럼에도 <조선일보>의 이번 보도는 ‘이제 보수진영도 제대로 된 통일론을 가질 수 있는 시점이 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보수든 진보든 ‘유효한 통일론’이 사실상 없다. 진보의 통일론은 어느 틈엔가 대중성이 크게 약해졌다. 1980년대만 해도 진보진영의 통일론은 노태우 정부가 1989년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마련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정도로 대중성이 있었다. 독재 극복 등 사회 변화를 주도하는 동력 중 하나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틈엔가 ‘민족’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 통일론은 특히 젊은 세대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보수는 그나마 ‘통일론’이라 이름 붙일 것조차 없다. 존재해온 것이라곤 오직 ‘빨갱이는 나쁘다’는 식의 감정뿐이다. 그들에게 북한은 그저 ‘붕괴돼야 할 대상’이다. 그러니 중국의 부상과 북한에 대한 중국의 전략적 가치 등 객관적 현실 변화에는 눈을 감는다. ‘무너져야 할 북한’을 전제하고 있으니, 통일론도 오직 흡수통일론뿐이다. 남북관계 악화가 부를 미래의 국운 쇠락은 생각조차 않는다.

만일 보수와 진보가 각각 실효성 있는 통일론을 구성해낸다면 많은 것을 변화시킬 것이다. 우선 남북 당국의 진정성을 높일 것이다. 올해 남북의 신년사를 보자. 대화 없이 안보만 강조하면서도 평화통일을 이루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이나, 대화를 거론했지만 남한이 선행해야 할 조건을 여러 개 나열한 김정은 제1비서 모두 대화의 의지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보수와 진보, 그리고 북한 주민들까지 포함한 이 땅의 주인들이 실효성 있는 통일 논의를 갖췄다고 생각해보자. 남북의 위정자들이 결코 지금처럼 ‘대화’나 ‘평화’라는 말을 면피용으로 이용할 수 없을 것이다.

보수와 진보가 유효한 통일론을 각각 갖춘다면 남남 갈등 해소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남한의 보수와 진보는 ‘적화통일’이니 ‘흡수통일’이니 하는 단편적 이미지만을 갖고 서로를 비판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양쪽 모두 체계적 통일론이 없기 때문이다. 유효한 통일론은 보수와 진보 모두를 대화의 장으로 이끌 것이다. 서로의 차이점이 분명해지면, 대화를 통해 그것을 풀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대화가 돼야 화해도 가능해진다.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들이 보수의 목소리가 합리성을 갖추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계속 보였으면 좋겠다. <한겨레> 등 진보매체들도 진보의 목소리가 대중성 있는 통일론으로 발전해가는 데 더 큰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보수-진보가 대결 아닌 대화 상대방이 되도록 하는 것, 그것은 분단국 언론의 의무이기도 하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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