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 경제부장
2011년 7월까지 1년 동안 미국에 머물 당시 네 식구 통틀어 병원에 간 건 딱 한 번이었다. 가족 중 한 명의 충치 치료를 위한 치과 방문. 국내에서 오래전 때운 게 떨어져 나간 자리를 가장 저렴한 재료인 아말감으로 다시 채워넣는 치료였는데 나중에 비용청구서에는 200달러(한화 20여만원)가 넘게 찍혀 있었다. 출국 전에 가입해둔 장기여행자보험으로 벌충하긴 했어도 헉 소리가 절로 났으며, 그 뒤 병원에 가야 될 일이 또 생길까 싶어 조마조마했다.
미국 의료 시스템 경험은 한 번뿐이었지만 대중교통망 부재에 따른 불편은 매일 겪어야 했다. 두 아이의 등하교 때 날마다 학교를 자동차로 오가야 했고, 집 근방 호숫가 산책이라도 하려면 또 운전대를 잡아야 했다. 국내에서 자동차 운전을 않고 살았던 내겐 고역이었다. 한번은 아내가 지역 교육기관을 다녀오는 길에 버스로 집에 오려는 시도를 하다가 낭패를 당한 일도 있었다. 1시간가량 기다린 끝에 겨우 버스를 탔는데 집에서 제일 가까운 정류장이 3~4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 집에서 멀기도 했지만, 걸어다닐 인도 공간이 확보되지 않은 곳이 거의 대부분이라 결국 자동차로 태우러 와 달라는 ‘구조 요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귀국 뒤에도 가족 모두 큰 병치레를 하지 않아 병원 신세 질 일은 별로 없었지만, 다시 ‘뚜벅이’로 돌아온 내게 대중교통망은 절실하게 필요한 공공재다. 매일 출퇴근 길에서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고 시골 어머니 집에 갈 때는 주로 철도, 가끔은 고속버스를 탄다. 아주 드물게 가는 국내 여행 길에서도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의료 영리화는 물론이려니와 철도 민영화 논란 또한 내겐 직업적 관심사를 넘어 생활인으로서 절감하는 개인적 현안이기도 하다.
비교적 싼 공공서비스 요금이 공적 부문의 효율성을 곧 보장하는 건 아니라는 논박에 마냥 눈감을 수는 없다고 본다. 저렴한 공공요금이 자칫 다른 납세자들한테 짐을 떠넘긴 결과일 수 있겠기 때문이다. 다만, 그 셈법에서 자동차를 몰지 않고 더 걸음으로써 공적 부문의 의료비용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고, 자동차 매연을 덜 배출하게 되는 따위의 멀리 길게 효과를 발휘하는 순환의 고리까지 고려됐는지는 한번 묻고 싶어진다.
공공분야도 경쟁에 노출시켜야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식의 경쟁만능론에도 물음표를 던지고 싶다. 공기업 민영화가 거대 재벌기업의 독과점화로 이어져 경쟁 촉진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한 지난 시절의 사례는 제쳐두고라도 ‘경쟁=효율’이라는 등식을 부정하는 사례를 현실에서 보고 있어서다. 현실에선 선의의 경쟁도 있지만, 파괴적 경쟁도 드물지 않다. 신문 유통 분야의 총성 없는 전쟁이 신문 기사의 질 경쟁으로 이어졌던가? 교육 분야의 광기 어린 경쟁이 교육의 질 제고로 발전했는가? 경쟁이 효율을 보장하는 만능 열쇠라면 대통령도, 부처 장관도 두서넛씩 두어 경쟁을 시킬 일이다.
민영화 논란이 나올 때마다 뜨악하고 난감한 것은 그 단어의 겉말과 속뜻의 부조화다. 이미 이뤄진 민영화든, 현재 논란을 일으키는 민영화든 본질의 내용은 사적 주체(한국에선 대개 재벌)가 소유나 운영을 넘겨받을 수 있음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민영화는 오히려 정반대의 어감인 ‘사유화’라고 해야 마땅하다. 민영화의 어원으로 알려져 있는 영어 표현(privatization)은 그래서 매우 정직한 편이다. 전 미국 대통령 레이건과 함께 시장만능주의의 화신이었던 전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조차 “그 단어(privatization)가 싫다”며 사용하기를 오랫동안 거부했던 게 그래서였을 것이다. 민영화, 그 단어 참 고약하다.
김영배 경제부장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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