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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철도정상화론의 역설 / 이창곤

등록 2013-12-29 19:22수정 2013-12-30 15:10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정상화”(正常化). 철도 민영화 논란과 관련해 정부 쪽에서 애용하는 말이다. 지난 28일 열린 총리 주재 관계장관 회의에서 정홍원 국무총리는 이 단어를 특히 강조했다. “경쟁체제를 만들겠다는 것은 비정상을 정상화하겠다는 것입니다.” 파업 유발요인인 수서발 케이티엑스(KTX) 법인의 철도 운송면허 발급을 결행한 다음날 국토해양부의 설명에서도 이 말은 핵심 어휘였다. “경쟁 도입이 철도 경영을 정상화하고 철도산업의 발전을 여는 단초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요령부득의 말이며 경쟁지상주의적 인식이다. 경쟁체제가 아닌 것은 비정상이란 말인가?

정상화는 박근혜 정부 쪽 각료들이 즐겨 쓰는 표현이다. “공공기관 정상화”, “주택시장의 정상화” 등이 그것이다. 이 말은 실은 이명박 정부에서도 자주 쓴 표현이었다. 지난 2008년 이른바 ‘부자감세’ 정책을 발표할 당시 내건 엠비 정부의 구호는 ‘세제 정상화’였다. 다주택자 양도세 완화 정책을 추진할 때도 “부동산 세제 정상화”가 명분이었다. 2009년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의원총회에선 당정은 “징벌적 세금 폭탄을 조세 형평에 맞게 정상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참여정부의 세금 정책을 부정하는 데 정상화란 어휘를 동원한 것이다.

정상화는 ‘그릇된 것을 제대로 된 상태로 만드는 것’을 뜻한다. 마땅히 이뤄져야 할 일이다. 더욱이 그것이 국가적 차원의 정책이라면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런데 정상화론의 역설은 이 말을 애용하면 할수록 비정상적인 것이 많음을 스스로 인정하게 되는 점이다. 그렇기에 이 말을 사용할 땐 유의해야 하며, 특히 정책담론으로 제기할 때는 최소한의 전제가 필요하다.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을 합리적이고도 명확히 밝히는 것이 첫째 전제다. 정상화의 내용과 해법에 대한 다른 인식과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노력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또 하나의 중요한 전제다.

이런 전제 없는 정상화 담론은 구호는 될지언정 지지와 진정성을 얻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현실이 되긴 어렵다. 오히려 그런 정상화론은 따지고 보면 자기 정당화를 위한 레토릭이기 십상이다. 때로는 독단과 배제를 감추기 위한 비정상적인 사이비 언어일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 정부의 철도 정상화 담론이 국민의 지지와 진정성을 얻지 못하는 것도 이렇듯 거쳐야 할 여러 전제를 경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수서발 케이티엑스 법인 설립이 정상화의 길이라면 박근혜 정부와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은 그 해법을 놓고 노사정 대화의 과정을 거쳤어야 했다. 정부 정책이니 대화와 타협의 영역이 아니란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정부 정책이니 대화와 타협이 더 필요하다. 경쟁체제 도입이 과연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적절한 기준인지도 의문이다. 수서발 케이티엑스 법인 설립이 실질적인 경쟁효과와 효율성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답도 충분치 못하다.

벼랑 끝 대치로 대량해고 등 엄청난 후유증이 우려되는 ‘철도 민영화’ 논란을 푸는 열쇠는 오직 대화뿐이다. 지금이라도 박근혜 정부와 코레일은 진정 정상화의 의지가 있다면 면허 발급을 유보하고 다양한 채널을 가동해 노사정 대화에 나서야 한다. 자칫 철도 정상화를 이루겠다는 그들의 길이 선로를 벗어나 우리 사회를 더 비정상으로 치닫게 할까 걱정스럽다. 끝으로 정상화 얘기가 나온 마당이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히 정상화가 이루져야 할 분야를 꼽자면 ‘노동’이란 생각이다. 철도 파업에서 보듯 헌법에 보장돼 있는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 노동 3권조차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못하는 게 오늘의 대한민국 노동의 현실이다. 우리 사회에서 법과 현실의 간극이 가장 큰 분야 또한 노동이다. 노동에서의 정상이 이뤄질 때 우리는 비로소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다.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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