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
최근 일본 오사카와 이탈리아 볼로냐 출장을 잇달아 다녀왔다. 두 도시 중심가의 밤거리 조명이 사뭇 달랐다. 오사카 중심가 밤거리는 번쩍거리는 네온사인에 대낮같이 환했다. 볼로냐 중심가 조명은 꽤 어두웠다. 천년 고도의 유적지로 건물이 낡은 탓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조도가 낮아 어두컴컴했다.
두 도시의 대조적인 밤거리 조명을 보며 이탈리아와 일본의 상반된 에너지 정책을 떠올렸다. 이탈리아는 주요 7개국(G7) 가운데 유일하게 원전이 없는 나라다. 체르노빌 사고 다음해인 1987년 국민투표로 신규 원전 건설을 멈추고 기존 원전을 해체하기로 결정했다. 1960대까지 세계 4위의 원전 대국이었던 이탈리아가 원전 포기라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을 가장 많이 갖고 있으며, 지진이 빈번한 나라에 살고 있는 국민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런 결정을 흔들림 없이 지속하기란 쉽지 않았다. 다른 나라에 견줘 높은 전기료와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으로 원전 재가동 의견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2008년 이탈리아 정부는 사회적 손실이 약 500억유로(72조4천억원)에 이르고 에너지 안보가 매우 취약하다며 원전 재가동 분위기를 띄웠다. 결국 그해 말 베를루스코니 정부는 원전 재도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뒤 원전 재개에 대한 국민투표가 다시 실시됐다. 투표 결과는 90% 이상의 압도적인 반대였다. 이탈리아 국민은 높은 전기료와 사회적 비용을 떠안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선택한 것이다.
일본의 원전 정책은 이탈리아와 너무나 달랐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 뒤 민주당 정권이 내건 ‘원전 제로’ 정책은 지난해 12월 자민당 아베 정권이 들어서면서 사실상 버려졌다. 아베 정권은 안전이 확인된 원전은 재가동하기로 정책을 바꿨다. 최근에는 내년 초 확정할 새 에너지기본계획에 원전을 주요 전력 공급원으로 명시했다. 도쿄전력 등 원전 관련 기업들도 사고가 난 원전만 해체하고 나머지는 수명이 다할 때까지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오사카에서 만난 일본 사람들은 방사능 유출과 원전 문제를 들춰내고 싶어하지 않았다.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애써 받아들이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출장에서 돌아와 본 서울의 밤거리 조명은 오사카만큼이나 휘황찬란했다. 지난 10일 정부는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계획안이 원전 확대책을 담고 있어 파장이 만만찮다. 정부는 민관워킹그룹이 제안한 2035년 기준 원전 비중 최대 범위인 29%를 반영한 것이라고 밝혔다. 2008년 발표한 1차 계획안의 2030년 기준 41%에 견줘 그 비중을 줄인 것인 양 내세웠다. 하지만 실상은 현재 원전 비중이 26.4%인 것에 견줘 오히려 늘린 셈이다.
원전을 더 짓지 않고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수급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이미 많은 나라들에서 여러 가지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이탈리아는 신재생에너지원 확보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독일, 오스트리아는 지역의 자연 자원을 활용한 에너지 자립 마을들이 오래전부터 만들어지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부터 원전 하나 줄이기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지역에서는 태양광, 폐목재(팰릿) 등 자연 자원을 활용해 에너지를 생산하고, 가까운 지역에서 소비하는 로컬에너지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화려하지만 불안한 일본의 길을 갈 것인가, 불편하지만 지속 가능한 이탈리아의 길을 갈 것인가. 우리의 미래는 지금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달려 있다.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 h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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