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입시철이다. 수시모집 발표가 나고, 대박이 난 집도 있고, 이웃과 친척들에게 말도 하지 못하고, 수험생뿐만 아니라 부모들까지 죄인이 된 집들도 많다. 대학입학시험이 여전히 일생을 좌우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기 때문에 사회 전체가 난리도 아닌 셈이다. 이번 입시에서 면접시험 시험관으로서 경험 한 토막.
면접시험은 서류심사를 통해 1차 2~3배수로 선발된 학생들 중에 2차로 합격자(사실상 최종합격)를 선발하는 과정이었다. 수험생들은 면접을 위해 다양한 서류를 제출했다. 학창생활을 어떻게 지내왔는지, 고등학교 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겪은 성공과 실패의 이야기, 감명 깊게 혹은 재미있게 읽은 책, 사회봉사 경험 등등. 이름이나 가족관계 그리고 졸업한 학교 등은 알 수 없고 이들이 제출한 서류를 보고, 질문을 통해 학생을 평가해야만 했다. 거의 모든 서류들이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잘 갖춰져 있어서 차별화하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너는 고등학교 다니는 동안 내내 공부를 참 잘했다. 자네를 포함해서 오늘 면접 보는 대부분 수험생들이 전교 1, 2등 하는 학생들 아니냐. 그런데 너희 친구들 중에서 50% 정도는 대학에 가기 어려울 정도로 공부와는 담쌓고 지낸 학생들이 많을 거다. 그런 학생들도 이제 졸업을 해서 교문을 나서야 한다. 그 학생들에게 지난 3년의 시간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그 학생들의 입장에서 지난 3년간의 학창시절을 회고해 봐라.”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사회관계나 사회현상을 어떻게 성찰하는지를 보고 싶었다.
세 가지 정도의 답변(말하자면 입장 바꿔서 하는 회고 혹은 성찰)이 나왔다. 가장 많은 답은 “후회하고 학교 정문을 나갈 거 같다, 그때 공부하기 싫어도 좀 참고 할걸, 조금만 더 인내심을 키웠더라면” 등등 ‘후회형 성찰.’ 둘째는 “나는 공부가 맞지 않는 거 같다, 그러니 미용·요리·댄스 등등 내가 배운 기술을 통해, 그걸로 열심히 하면 나름대로의 미래가 열리지 않을까”라는 식의 ‘낙관형 답변’. 셋째, “공부를 잘한 것도 아주 못한 것도 아니지만,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 미래가 조금 불안하기는 하지만 크게 후회는 없다”라는 식의 ‘나름 만족형 성찰’.
면접을 본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남들이 놀 때, 남들이 빈둥댈 때, 자신을 채찍질하고, 절제하면서 공부에 매진한 훌륭한 수험생들임에 틀림없었다. 앞으로도 자신을 삶을 잘 개척해 갈 것 같았고, 사회의 지도자로 성장할 것 같았다. 그런데 정말 아쉬웠던 건, 다른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는 능력이 너무도 모자랐다는 점이었다.
답변 중에 “모든 걸 공부와 성적 중심으로 줄 세우는 학교가 싫었다, 그런 잣대로 학생을 평가하는 선생님들이 정말 미웠다.” 뭐 이런 식으로 공부와 담쌓은 학생들이 가질 법한 느낌, 감정을 드러내는 답변을 하는 수험생은 없었다. 중3 영어 실력도 안 되는 학생이 10시간씩 고3 교실에 앉아서 사실상의 고문을 받고 있어야 하는 현실을 들여다본 학생은 없었다. “성적이 정말 처졌던 학생들은 그냥 아무런 꿈도 꾸지 않고 교문을 나가는 건 아닐까, 아니면 선생님이 밉지는 않았을까”라고 기대하는 답을 유도해 줘도, “그들 나름대로의 꿈을 가지고 나가지 않을까요, 제 친구들 중에 선생님을 미워하는 애들은 못 봤는데요”라는 응답이 되돌아왔다. 그네들에게 선생님은 언제나 친절하고 자신을 예뻐해주는 그런 선생님이었을 테니까. 그런 답이 나왔으면 최고점을 주려고 했는데, 한 명도 없었다.
성실한 사람, 자기 절제를 잘하는 사람, 목표를 설정하면 매진하는 힘을 가진 학생들은 참 많이 있었다. 모두 훌륭했다. 그러나 이들이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지도자가 되었을 때, 그들 성공한 사람들은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다보는 것일까. 학교와 선생님이 정말 미울 수밖에 없었던 친구들, 그렇지만 말할 수 없었던 친구들, 혹은 그래서 학교를 뛰쳐나간 학생들은 그들에게 어떤 사람들로 기억되는 것일까. 남의 처지에서 세상을 바라다보는 지도자를 찾아보기 어려운 까닭이 이런 데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연재강명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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