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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혜정 칼럼] “수고하세요, 무림의 고수”

등록 2013-12-10 19:06수정 2013-12-11 09:07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주말에 일본 도쿄 학회에 다녀왔다. 토론자가 늦게 와서 가슴을 졸였는데, ‘특정비밀보호법안’ 통과를 막으려 의회 앞에서 시위를 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아베 정권이 추진해 온 이 법안은 일본의 국가안보에 지장을 줄 수 있는 방위·외교·테러 관련 정보를 ‘특정비밀’로 지정하고 이를 유출한 공무원을 최고 징역 10년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한 법안이다. 이 법안은 일단은 미국과의 활발한 정보공유를 위한 미국용/경제용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상 정보 통제의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으며 군국주의의 부활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일본이 자랑스러워하는 마스카와 도시히데 등의 노벨상 수상자, 애니메이션 작가 미야자키 하야오, 신부와 승려 등 성직자와 나의 오랜 친구 우에노 지즈코 선생까지 그 사회 ‘어른’들이 총집결해서 반대를 했지만, 연립 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은 지난 6일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공무원들이 늘어나야 하는 시점에 공무원을 회사의 고용원처럼 여기며 국가를 사유화하려는 흐름이 일고 있고, 이것은 인터넷이라는 고도의 정보기술로 인해 가능해진 것이다. 지식인들은 앞으로 공무원들이 몸을 무척 사리게 될 것을 우려했다. 이 법안은 위의 명령을 그대로 수행하지 않고 스스로의 판단을 하는 이들을 처벌할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공무원들은 매우 몸보신을 할 거라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국정원의 선거 개입 의혹이 세간의 이목을 끄는 것도 이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투표에 공무원들을 개입시키고 이에 문제제기를 하는 공무원들을 사찰하면, 그 정부는 삼권분립의 원리를 무시하고 ‘막가는 권력’으로 스스로의 몸을 불리게 된다. 고도기술 정보사회의 협치(協治)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져야 할 시점에 오히려 협치를 가장 두려워하는 반동적 정권이 들어선 최근의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나는 그것은 급변하는 시대가 초래한 일시적 패닉 상태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통해 유토피아를 만들고자 한 근대 문명은 압축적 변화 와중에 분명한 위기를 맞고 있다.

자원 고갈과 환경오염, 그리고 핵의 위험만이 아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통해 밝혀진 세계 경제의 도박성, ‘빅 데이터의 통계’가 지구상 존재의 운명을 결정할 가능성, 사이버 전쟁 위험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풀어야 할 문제들은 산적해 있다. 안전에 대한 점검 없이 만들어대는 핵발전 정책과 ‘4대강 사업,’ 그리고 국정원 선거 조작에 이르기까지 ‘도’를 넘어선 일들이 속출하고 있다.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는 노동자들에게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물리고, 조용하게 살고 있는 국민들의 토지를 강탈해 자살에 이르게 하는 등 강탈의 통치가 대낮에 벌어진다. 누구보다 똑똑하고 힘이 있다고 자부하면서 “차마 해서는 안 되는” 일들, 범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해버리고 있는 것이다. 절대왕정에 맞서 성립된 근대 국가가 시장권력이 절대화된 시점에 스스로를 절대화하며, 종교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새로운 절대권력’에 맞서 천주교 사제단과 같은 오래된 종교계가 나선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새로운 문명전환이 기존의 종교 조직에 의해서 가능해질 일은 아닐 것이다. 다시 겸손해져야 함을 깨닫고 ‘신’을 경외하기로 한 새로운 지구 주민들의 협력에 의해, 새로운 시대는 열릴 것이다.

지금 파국의 현실은 그런 면에서, 우리들에게 두려워 말고 바로 그 현장에 가서 시대 공부를 하라고 말한다.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잔꾀로 문제 해결을 하는 세력이 오래갈 리는 없다. 서로를 초대하고 지혜를 나누며 기도하는 마음이 모일 때 기적이 일었고, 그 기적들이 새 문명의 근간이 되어왔다. 일전에 광화문에서 밀양 송전탑 관련 일인시위를 하던 내게 멋쩍어하며 “수고하세요”라는 말을 건네던 청년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들은 ‘정의를 구현하려는 어른들’이 ‘무림의 고수’ 같다며 경외심을 보낸다. 사회운동이 특정 세대의 소유물이 되는 것이 불편하다. “너희도 수고하게!” 이 말을 하고 싶다. 학기말 시험이 끝나면 학생들과 바로 밀양 현장에 가 볼 생각이다.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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