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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권태선 칼럼] 만델라의 몫, 새 세대의 몫

등록 2013-12-09 19:10

권태선 편집인
권태선 편집인
영국 <가디언>은 만델라의 서거를 1963년 존 에프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암살이 세계에 던진 충격에 비유했다. 세계 곳곳에서 세기적 통합자, 치유자, 해방자, 혁신가 등 헌사가 쏟아진다. 그와 함께 반아파르트헤이트 투쟁을 이끌었던 데즈먼드 투투 주교는 그를 성인이라 불렀다. 그의 추도식은 과거 그를 테러리스트라며 비난했던 미국에서 현직인 오바마 대통령은 물론 부시·클린턴·카터 등 전직 대통령이 셋이나 참석하는 등 세기의 행사가 되리란 전망이다.

세계가 그에게 이렇게 경의를 표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모든 사람이 동등한 기회를 누리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라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 과정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동료들이 목숨을 잃고 그 자신도 27년간이나 감옥에서 보내는 고통을 겪었음에도, 적에게 보복의 칼 대신 담대한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 남아프리카공화국을 평화적으로 변혁시켰다는 데 있을 것이다. 1994년 흑인들이 투표권을 행사한 첫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된 그의 첫 내각은 그야말로 이념과 인종의 용광로였다. 대통령 재임 중 그가 가장 힘을 쏟은 것 역시 흑인들의 쓰린 마음을 달래고, 복수에 대한 두려움에 떠는 백인들을 안심시키는 것이었다. 이제 남아공 국민들은 권리장전이 포함된 훌륭한 헌법을 갖게 됐고 흑인들도 백인과 동등하게 참정권을 행사하며, 무상교육을 받고, 거주이전의 자유를 누린다.

참 많은 것이 변했다. 그러나 삶의 현장으로 눈을 돌리면 별로 변한 게 없기도 하다. 소득 불평등은 오히려 심화돼 하위 50%가 전체 소득의 7.8%를 나눠 갖는다. 백인은 83%가 상위 20%에 들지만 흑인은 겨우 11%만 그 속에 든다. 만델라가 만든 새 질서가 가져온 풍요는 오롯이 백인 기득계층과 신흥 흑인 엘리트층에 귀속됐다.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집권 엘리트의 부패와 무능은 희망을 환멸로 바꿔버렸다. 그러다 보니 대학 캠퍼스를 중심으로 만델라가 해방투쟁을 백인들에게 팔아버렸다는 비판이 나오고, 백인의 이익에 봉사하는 민족회의 대신 새로운 흑인 해방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남아공의 오늘에는 민주정부 10년을 지낸 우리의 현실과 흡사한 점이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그조차 퇴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민주정부 10년은 시민적 자유를 확대시킨 기간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민주정부 시기에 시장근본주의가 전면화하면서, 양극화가 심화되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남아공의 민족회의 정권 역시 시민적 자유권 신장에선 성과를 보였지만, 시장근본주의에 투항해 사회경제적 정의 실현에 실패했다.

하지만 이런 현실의 책임을 만델라에게, 그리고 과거 정권에 돌리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만델라의 집권 5년은 반세기 이상 반목하며 피비린내 나게 싸워온 흑백 사회의 통합의 바탕을 만들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는 그의 몫을 다했다. 27년간의 투옥과, 가족의 해체와 희생(첫 아내는 그를 떠났고, 딸은 “국민의 아버지였지, 내 아버지인 적은 없었다”며 그의 포옹을 거부할 정도였다.)이라는 대가까지 지불하면서. 우리의 민주화 세대도 마찬가지다. 이젠 새 세대가 자신에게 주어진 역사의 몫을 감당할 차례다.

그런데 요즘 우리 젊은 세대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걱정과 희망이 교차한다. 최근 한 고교 교사로부터 들은 이야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어차피’란다. ‘어차피’는 자포자기의 표현이다. 자신들은 이미 사회적 낙오자로 운명지어졌는데, 노력하면 무엇하냐는 것이다. 이렇게 일찍부터 스스로를 ‘잉여’ 또는 낙오자로 규정하는 젊은이들이 쌓여가는 현실은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바로 이 낙오의 경험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능력과 새로운 사회에 대한 공통의 꿈을 키우는 계기로 전환된다면, 이들이야말로 새로운 변혁의 주체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만델라 역시 실패와 패배의 경험이야말로, 자신을 키운 자양분이라고 말한다.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은 실패를 하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실패할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데 있다.”

권태선 편집인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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