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마디바’(존경받는 어른)가 세상을 떠났다. 지구촌이 온통 추모 분위기다. 10일 치러질 영결식엔 국왕·대통령 등 세계 정상만도 수십명이 참석한다. 넬슨 만델라, 그는 왜 이토록 추앙받는가? 그가 지구촌에 남긴 특별한 유산은 무엇인가? 타계 직후 세계 언론은 한편의 대서사시 같은 생애를 조명하며 이 전설적 인물의 위대성을 다투어 설파했다. 나는 여기에 덧붙여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요소는 ‘정치가’로서 만델라의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넬슨 만델라 평전>의 저자인 자크 랑에 따르면, 만델라는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순수한 열혈 청년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기질적으로 노련한 정치인”이었다. “마치 연극인처럼 무대 의상과 장치까지 세심하게 고려한” 예술적 정치가였다는 것이다. 이는 적잖은 일화를 통해 확인되는데, 우선 자크 랑이 언급한 1962년의 일이다. ‘국민의 창’이란 비밀 군대를 만들어 무장투쟁을 시도하던 차 체포된 만델라는 법정에 출두하게 됐다. 그는 당시 평소 입던 양복 대신 표범 가죽으로 만든 부족의 전통복을 입고 재판에 임한다. 그의 모습은 ‘백인 법정에 선 아프리카 흑인의 상황’을 극적으로 상징한다. 그날 이후 만델라는 아프리카 흑인의 영웅이 됐다.
2002년 말 국제부 기자로서 취재차 남아공을 방문했을 때 들은 1995년의 일화는 더 강렬하다. 마침내 아파르트헤이트(흑백 분리 정책)를 폐기하고 대통령이 된 만델라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화해와 흑백 통합이었다. 자신의 메시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려고 그가 선택한 곳은 럭비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요하네스버그의 운동장이었다. 럭비는 아프리카너(남아공의 백인)들과 동일시되는 스포츠다. 만델라는 경기 직전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번에도 주무기는 옷차림이었다. 대통령 만델라는 남아공 럭비팀 백인 주장인 프랑수아 피나르 선수의 이름과 번호가 새겨진 셔츠를 입고 경기장에 나타났다.
이런 모습은 아프리카너들에겐 ‘마법과 경이의 순간’이었다. 당시 백인 관중들은 마치 한 사람처럼 “넬슨! 넬슨!”이라고 외쳤다. 한 언론인은 이날을 “남아공 (민주화) 이행에서 결정적인 순간”이라고 꼽았다. 두려운 흑인 투사는 어느새 백인들에게도 친숙한 지도자가 됐다. 만델라 자신이 자서전에서 소개한 1993년의 일화도 언급할 만하다. 그해 4월 대중적 지지가 높았던 남아공 좌익 지도자인 크리스 하니가 한 우익 계열 백인에게 총으로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백인 정부로부터 권력 이양을 받기 한 해 전 일이었다.
자칫 유혈충돌로 치달을 수 있는 그때, 만델라는 방송에 출연해 연설을 한다. “편견과 증오로 가득한 백인 청년 하나가 우리나라에 와서 매우 사악한 일을 했고, 그래서 온 나라가 파멸의 순간에 서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남아프리카의 백인 여인은 죽음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 암살자를 법이 처벌하도록 만들었습니다. … 지금은 우리 모두의 자유를 파괴하려는 세력에 대항해야 할 때입니다.” 만델라는 이 연설에서 암살자의 자동차 번호를 기록해 그를 체포하도록 도운 백인 여성을 부각함으로써 ‘백인 대 흑인’이란 대결적 구도를 ‘모든 남아공 사람 대 우리를 공격한 사람들’로 재구성(애덤 카헤인)했다.
헤닝 마이어 런던정치경제대 방문연구위원은 대의명분에 대한 깊은 헌신(또는 책임의식), 그리고 화해와 통합의 방식에서 보여준 특유의 기질적 힘이란 두 가지 요소를 만델라가 남긴 정치적 유산이라고 말한다.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하고 있는 우리 사회가, 특히 정치권이 주목해야 할 만델라의 위대한 유산은 ‘전설적 투사 만델라’보다 ‘화합과 포용의 정치가’로서의 현실적 면모와 노련한 리더십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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