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
얼마 전 일본 오사카역에서 걸어 10분 거리에 있는 아만토 마을을 찾았다. 번화한 도심 길 뒤쪽으로 100년 넘은 작은 집들이 카페나 옷가게로 바뀌어 동네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을 잡는다. ‘아만토 공동체’로 불리는 이곳에 10년 전 한 젊은 예술인이 들어와 ‘살롱 드 아만토’라는 카페를 만들었다. 아만토는 한자로 천인(天人).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함으로써 행복한 공동체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카페를 거점 삼아 청년들이 하나둘 모여 인근 작은 점포들을 고쳐 여러 곳에 가게를 냈다. 20여명이 관람할 수 있는 독립영화 전용극장과 공연장, 바도 만들었다. 지금은 게스트하우스, 건강음식 레스토랑, 시리얼 카페 등도 운영하고 있다. 기모노 옷 입는 방법과 같은 재미난 문화교실도 진행한다. 연극·춤 등 분야가 다른 예술가 10여명이 때때로 이벤트를 열기도 한다. 건물들은 100년이 넘어 허름하기 짝이 없지만 그 안에는 젊음의 숨결이 스며 있다.
아만토 마을이 관심을 받는 이유는 청년실업의 사회문제로 고민하는 일본 사회에 하나의 대안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20년 가까이 불황을 겪고 있는 일본은 2003년부터 적극적인 청년고용정책을 세워 창업·취업 등 다각도의 지원을 해 왔다. 하지만 10년간의 노력에도 은둔형 청년은 더 늘었고, 심지어 청년 생활보호 대상자가 3배나 느는 등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정부가 아닌 청년들 스스로 지역에 들어가 공동체를 만들고, 일거리를 찾는 아만토의 실험이 주목을 받게 됐다.
아만토 마을이 10년간 지속해 온 데는 네트워크, 곧 관계망의 힘이 컸다. 아만토에서는 예술가뿐 아니라 사회복지사, 자기 점포를 운영하고 싶은 20대 청년, 동네 주민들이 다양한 욕구와 방식으로 아만토와 인연을 맺고 일을 하거나 자원활동을 한다. 이런 관계망은 아만토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와도 연결되어 있다. 아만토 사람들은 지역을 넘어 일본, 세계 공동체와의 관계도 중요하게 여긴다. 동북지방 지진피해 지역을 스스로 조사하고, 자원봉사단을 꾸려 참가하기도 했다. 필리핀 엔피오와 공정무역을 하고, 자전거 공유사업으로 번 수익금을 필리핀에 나무 심는 데 쓰기도 한다. 지역에서 새로운 실험들을 하고 있는 세계 곳곳의 청년들과 만나는 작은 포럼도 꾸준히 열고 있다.
아만토 관계망은 닫혀 있지 않고 열려 있다.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잡는다.’ 이것이 이들 관계의 원칙이다. 청년들은 이곳에서 연대감을 느끼며 활동하다, 떠나고 싶으면 언제든 떠난다. 10년 새 이곳을 거쳐 간 청년만 해도 수십명이 된다. 이들은 다른 지역에 가서 ‘아만토 모델’을 실험해 보기도 하고, 아만토 마을의 활동과 행사를 알리는 홍보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열린 관계망이 조직을 꾸려가는 데는 불안 요인이 되기도 한다. 관계의 지속성을 엷게 해 공동체의 안정감을 약화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길게 보면 오히려 안정성과 지속성을 쌓을 수 있는 터전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만토 마을에서처럼 열린 관계망들이 확장되고, 연결 관계의 위치 변화가 자유로워야 한다.
요즘 우리 젊은이들의 사정은 딱할 정도로 어렵다. 취업난으로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고 홀로 살아간다는 ‘3포 세대’란 말이 낯설지 않을 정도로 청년들의 삶이 갈수록 힘겨워지고 있다. 청년실업의 사회문제는 단순히 창업이나 취업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만으로 온전히 풀기 어렵다. 우리 청년들도 스스로 지역에서 관계망을 만들어 협력하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아만토 방식을 참고했으면 한다.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 h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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