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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가치 빠진 역사관

등록 2013-11-27 19:26수정 2013-11-28 10:26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헨리 토머스 버클은 아주 특이한 삶을 산 영국 역사가이다. 그는 매일 7마일을 걸었고, 7시간을 독서로 보냈으며, 빵과 과일로만 점심을 먹었고, 19개 언어에 능통한 당대 최고의 체스 선수였다. 몸이 허약해 대학에 다니지 않았지만 학문을 좋아하여 부친으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뒤 <영국문명사>라는 저작을 남겼다. 그러나 건강을 되찾기 위해 떠난 서아시아 여행에서 열병에 걸려 이른 삶을 마감함으로써 완성시키지는 못했다.

그 저작은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 역사의 진행을 기계적인 작용으로 보면서, 자연과학의 규범을 역사학에 적용시키려는 태도 때문이었다. 그는 인간의 행동이 물리의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처럼 고정적인 규칙을 따른다고 보았다. 따라서 결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인간 내면의 가치에 대한 성찰과 같은 것은 그의 역사 서술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에 따르면, 유럽인은 자연보다 강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자연이 인간보다 강해 유럽인만 자연을 정복하여 더 위대한 문명을 탄생시켰다.

액턴 경은 그가 “인간을 인간으로 본 것이 아니라 기계로 봤다”고 하면서, 그는 결단코 참된 역사가의 정반대 편에 있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역사가도 역사의 조류에 휩쓸리며 세태를 반영한다는 견해를 고려하여 그를 이해하려 한다면, 그의 역사관은 과학 발전의 결과로 산업혁명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시대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21세기,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문화적으로도 훨씬 성장한 대명천지에 그와 비슷한 논리를 펼치는 사람들이 있다. 일제강점기가 우리를 근대화로 이끌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펼치는 사람들이다. 그것은 현 권력이 원하는 방향으로 역사 서술을 탈취하여 왜곡된 기록을 남기려는 시도와 다를 바 없고, 그들이 한국사 교과서까지 집필했다. 역사에서 가치를 뺀, 논할 가치도 없는 주장이 정권의 부름을 받은 것이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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