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논설위원
이란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국제사회의 오랜 노력이 큰 고비를 넘겼다. 지난 24일 미국 등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과 독일(P5+1)이 이란과 핵 협상을 타결한 것은 ‘끝의 시작’이라고 할 만하다. 물론 이후 서로 ‘진실의 순간’을 확인할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하다. 강경파의 반발을 이겨낼 정치력 또한 필수적이다.
이번 타결안은 북한 핵 문제를 풀려는 노력과 대비된다. 이와 관련해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두 나라의 차이를 강조한다. 그는 이란이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국이면서 핵 협상에 참여해왔고, 핵 시설에 대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매일 사찰을 받기로 했으며, 핵무기를 제조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한다. 이란은 북한과 다르니 일단 믿어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타결안의 기본 틀은 2005년 9·19 공동성명과 큰 차이가 없다. 북한은 당시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을 포기하고 조속한 시일 안에 핵확산금지조약과 국제원자력기구의 안전조처에 복귀할 것’을 약속했다. ‘모든 핵무기’라고 했지만 북한이 첫 핵실험을 한 시기는 2006년 10월이다. 핵 포기와 경제협력을 교환하는 방식도 비슷하다. 그럼에도 이후 북한 핵 문제는 더 나빠졌다. 북한과 미국 모두 합의 이행에 성의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이번 타결안에 대해서는 기대가 더 많다.
왜 그럴까? 케리가 말하지 않은 진짜 차이에 그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지정학적 조건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다르다. 이란은 세계 4위 석유매장국인데다 인구 규모와 국토가 큰 지역강국이다. 미국이 이란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국제 석유시장의 움직임은 물론이고 중동지역 전체의 질서가 달라지게 된다. 두 나라는 전략적·경제적 면에서 핵 문제를 풀어야 할 절실한 동기가 있다.
반면 북한은 약소국이다. 대북 제재가 해제되더라도 당장 지역 경제에 미칠 영향은 거의 없다. 미국은 주로 동아시아 안보 전략 차원에서 북한을 바라보지만 그 중심에는 북한이 아니라 중국이 있다. 아시아 중시 정책을 선언했으나 자원이 달리는 미국으로서는 일본을 비롯한 역내 나라들을 묶어 대중국 전선을 구축하는 것이 최대 과제다. 최근 6자회담 주최국인 중국 쪽에서 ‘미국이 북한 핵 문제라는 대중국 견제 카드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잇따라 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란의 사례와 과거 경험에 비춰 볼 때 북한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풀려면 세 가지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첫째,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는 대가로 안전보장과 경제협력을 함께 제공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미국의 태도가 바뀌려면 당연히 대중국 전략의 조정이 필요하다. 둘째, 북한이 달라져야 한다. 중도파인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지난 6월 선거에서 이기지 못했다면 이번 타결안은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셋째, 이 두 가지 변화를 이끌어내고 지속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동력이 있어야 한다. 이란의 경우 이 힘은 미국과 이란 내부, 중재세력에 골고루 존재한다. 북한 핵 문제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를 개선해 대북한 지렛대를 확보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중국도 중요하지만 늘 밝혀온 대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우선할 뿐이다.
관련국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북한 핵 문제는 이란보다 풀기 쉬운 구조다. 우선 비토 세력이 훨씬 적다.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의 반이란 국가와 미국 내 보수세력은 일관되게 대이란 강경론을 주장한다. 유럽에도 반이란 정서가 강하다. 이에 반해 6자회담 참가국이 대북 핵 협상을 벌이는 데 반대하는 나라는 없다. 핵 문제 해결에 강한 동기를 가진 한국이라는 존재도 이란의 경우에는 없다.
미국은 지난 2년 가까이 이란과 비밀 접촉을 해왔다고 한다. 24일 타결안은 이 협상에서 합의된 내용을 추인한 것이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서도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핵 문제는 충분히 풀릴 수 있다. 지금 우리 정부의 과제는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