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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랑케의 교훈

등록 2013-11-20 19:18수정 2013-11-20 20:48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그는 유약하고, 말랐고, 제대로 앞을 보지 못해 읽고 쓰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와 헤어진 뒤 그에 관해 듣게 될 소식은 부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1877년, 30대의 역사학도였던 영국 사학자 액턴 경이 82살의 대가 레오폴트 폰 랑케를 만났던 순간을 회상하며 한 말이다. 그러나 웬걸, 랑케는 2년 뒤부터 <세계사>를 쓰기 시작하여 매년 한 권씩, 죽음이 임박할 때까지 제6권까지 집필했다. 평민으로서 귀족의 작위를 받은 배경엔 이런 학문적 성실함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19세기를 대표하는 서양 역사가로 랑케를 지목한다. 그가 추앙받는 것은 60여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작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오늘날까지 통용되는 역사학의 규범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는 엄밀한 문서 분석과 해석의 방식을 도입했고, 세미나 방식을 고안해냈다. 그 방식은 강의를 듣기 위해 유학 온 유럽과 미국의 학생들에 의해 널리 퍼져 지금도 대학원 수업의 정규적인 틀로 정착해 있다.

그렇다고 오늘날 랑케의 방식을 고수한다면 그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왜냐하면 그는 프로이센의 사관으로서 정치사에만 관심을 두고 정부의 공적 기록만 연구하여 역사를 서술했기 때문이다. 그 한계 내에서 랑케가 추구한 것은 주관적 판단 없이 ‘있었던 그대로의 과거’를 밝히는 객관성이었다. 이것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들에게 던지는 일말의 교훈을 담고 있다.

랑케는 무엇보다도 역사가 엄정한 학문이어야 한다고 믿고 기록에서 ‘자아의 소거’를 실천했다. 현재의 관심과 감정을 역사에 주입하는 것은 역사학의 수행을 방해한다. 그럴 경우 과거는 권력자나 신의 이익에 복무할 뿐이므로, 그것은 단호히 거부되어야 한다. 교학사 교과서는 정치에 의해 역사가 재단되고 기득권을 위해 역사가 봉사하던 옛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이현령비현령 논리가 웬 말인가. 역사학의 독립을 간원한다. 사실을 적시하라!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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