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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석구 칼럼] KT와 포스코, 성공 모델 만들려면

등록 2013-11-20 19:12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5년 전과 똑 닮은 장면이다. 못 나가겠다고 버티던 이석채 케이티 회장의 사표가 지난 11월12일 수리되자 불과 사흘 만에 정준양 포스코 회장도 결국 두 손을 들었다. 이들을 몰아내는 데 검찰과 국세청을 동원하는 수법도 비슷하다. 2008년 당시 남중수 전 케이티 사장은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됐는데, 이석채 전 회장도 지금 배임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사의를 표명할 수밖에 없었던 주요 원인도 포스코에 대한 강도 높은 세무조사였다.

정부 지분이 한 주도 없는 순수 민간기업이 정권 교체기마다 이렇게 흔들리는 건 분명 정상이 아니다. 모두가 비정상이라고 하는 이런 일이 왜 되풀이되는 것일까. 한마디로 정권의 탐욕 때문이다. 연간 수십조원의 매출에다 계열사만 50개 넘는 ‘주인 없는’ 거대기업을 장악해, 그들 기업으로부터 온갖 이권과 인사상 특혜 등 유무형의 단물을 빨아먹으려는 하이에나 정권의 탐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겉으로야 불투명한 지배구조, ‘시이오(CEO) 황제경영’ 같은 걸 지적하며 시이오를 쫓아내지만 핑계일 뿐이다.

박근혜 정부가 이석채 케이티 회장과 정준양 포스코 회장을 강압으로 몰아낸 것도 문제지만 그것까지는 그렇다 치자. 그들 또한 이명박 정부의 비호 아래 낙하산으로 내려온 업보가 있으니.

문제는 앞으로다. 제발 이제부터는 정권의 개입 없이 기업 스스로 최고경영자를 선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 그러려면 가장 먼저 청와대, 곧 박근혜 대통령이 이들 기업의 시이오 선출 과정에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 쉽지 않을 것이다. 거대기업 케이티와 포스코를 접수하면 대선 공신들의 수많은 알짜배기 일자리가 생기고, 그와 더불어 5년 내내 이들 기업에 빨대를 꽂아놓고 단물을 빨아먹을 수 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박 대통령이 진정 이들 기업의 발전을 생각하고, 우리 사회의 ‘비정상의 정상화’를 바란다면 순수 민간기업인 케이티와 포스코에서 확실하게 손을 떼야 한다.

정권의 입김이 사라진다고 이들 기업이 제대로 된 시이오를 뽑으리라는 보장은 물론 없다. 시이오 추천위원회가 자율적으로 시이오 후보를 선정해 주주총회(또는 이사회)에 상정할 수 있게 돼 있지만 주어진 역할을 얼마나 제대로 할지 솔직히 불안하다. 시이오 추천위원회에 한 가지 권고하고 싶다. 본격적인 후보 물색에 들어가기 전에 위원회를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운영하겠다고 대외에 공개 선언부터 하라. 지금 중요한 것은 얼마나 훌륭한 시이오를 뽑느냐보다 정권 입김에서 얼마나 자유롭게 시이오를 뽑느냐일지도 모른다. 잘못된 시이오를 뽑았다면 스스로 책임을 지게 하고 자율적으로 고쳐나가면 된다. 울트라슈퍼갑인 청와대가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가당키나 한 일이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제는 기업도 최소한 그 정도의 의지는 가지고 목소리를 내야 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장기적으로 외부 개입 여지를 주지 않으려면 지배구조를 탄탄히 만들어야 한다. 10여년 전 두 기업이 민영화됐을 때 우리 사회는 주인 없는 거대기업을 어떻게 경영할지에 대한 새로운 실험을 시도했다. 공기업도 아니면서 재벌기업도 아닌 거대기업이 어떻게 리더십을 창출하고, 어떤 지배구조 아래서 안정적으로 경쟁력을 키워나갈 수 있을지 관심거리였다. 자동차 전문기업이었던 기아자동차가 독자 생존에 실패하고 재벌 품으로 들어갔지만 케이티와 포스코는 다른 길을 가길 바랐다. 그러나 아직 성공 모델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다시 한 번 학계와 시민단체 등이 힘을 모아 주인 없는 케이티와 포스코의 바람직한 지배구조 모색에 나설 때다. 정부 입김도 막고, 또 내부 담합도 방지하려면 시민사회가 견인하고 감시하는 수밖에 없다. 정치사회 환경이 아직은 열악하고, 사외이사 등 내부 견제장치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들 기업을 또다시 하이에나 정권의 먹잇감이 되게 방치할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5년 뒤 하이에나한테 이리 뜯기고 저리 찢긴 채 만신창이가 돼버린 케이티와 포스코를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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