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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시각] 좋은사회란 어떤 사회인가 / 이창곤

등록 2013-11-17 19:07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소장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소장
‘좋은 사회’란 어떤 사회인가? 답은 각양각색일 것이다. 어떤 이는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상상하고, 다른 이는 ‘따뜻한 공동체 사회’를 꿈꾼다. 누군가가 민주주의를 역설하면, 다른 누군가는 복지사회를 주창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물음은 한 사람에게조차도 여러 답이 가능할 것이다. 꿈과 열정에 휩싸인 시절의 답과, 산전수전 공중전에 수중전까지 겪은 때의 답이 같을 리가 만무하지 않겠는가. 인간의 유전적 속성상 아예 그런 사회는 없다는 극단론도 있을 것이다. 얼마 전 독일 지성들과 이 논제를 놓고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서울 인사동의 밥집 겸 술집에서 마주한 이들은 독일 사회민주당의 헤닝 마이어 기본가치위원회 위원과 크리스티안 켈러만 전략 및 콘텐츠국 부국장, 그리고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의 크리스토프 폴만 한국사무소 소장이었다. 모임을 주선한 김택환 경기대 교수가 건네는 ‘소폭’을 꿀꺽꿀꺽 해치우는 솜씨만큼이나 술자리 대화에서도 열변을 토해내는 이들의 모습은 꽤 인상적이었다. 술자리에서 이처럼 요령부득의 의제를 놓고 이들과 얘기를 나눈 건 마이어 위원과 켈러만 부국장이 바로 올해 독일에서 출간된 <좋은 사회>(Good Society)의 공동 편저자이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에 이들의 진의를 다 이해할 순 없지만, 이들이 설파한 ‘좋은 사회’는 유럽 사회민주주의가 새롭게 모색하는 하나의 대안담론이자 정치이념이다. 현재 영국 런던정경대의 방문연구위원이기도 한 마이어 박사에 의하면, 유럽 사민주의 세력은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의 퇴조에도 “절호의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그 이유를 “준비 부족과 지적 무방비”에 있다고 본 유럽의 사민주의 이론가 및 활동가들은 대안적 사민주의 정치를 구상하며 몇 년째 공동작업을 진행해왔는데, 이 모임에서 새 출발을 위해 구축한 담론적 개념이 ‘좋은 사회’라는 것이다. 마이어 박사는 이 모임 전날 충북 오송에서 열린 ‘2013사회정책연합 공동학술대회’에서도 이를 피력했는데, “(좋은 사회 담론은) 현재의 경제적·정치적 문제를 철저히 가치중심적으로 분석해 새 정치를 수립하려는 접근법”이라며 “궁극적 목표는 (유럽 사민주의의)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는 정치적 비전을 개발하는 것으로, 먼저 ‘좋은 사회’를 정의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좋은 사회’로 나아가는 정치적 경로를 그려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노력을 통해 가치 중심의 정치적 나침반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면, 지금 유럽 사민주의가 직면한 정치적 격변의 소용돌이를 헤쳐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향후 더 많은 과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유럽 사민주의의 좋은 사회 담론은 우리 사회에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을까? 특히 분열과 무기력의 늪에 빠져 있는 진보개혁 세력에게 던지는 함의가 무엇일까? 우선 독일 지성들이 줄기차게 강조했듯이 한 사회의 정치 비전에 대한 가치 중심의 접근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적잖은 대안사회 담론이 나왔지만, 정치·경제적 시스템의 변혁에만 중점을 두면서 정작 그 토대가 될 가치와 철학적 이념에 대한 논의를 궁구히 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담론이 부박하게 유행 타듯 했다. 가치 중심의 접근법은 자연스레 부분적 보완이나 수사적 차원의 논의가 아닌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태도를 낳는다는 면에서도 중요하다. 또다른 주목할 대목은 한 사회의 대안적 가치를 모색하는 과정이다. 곧 유럽 사민주의 세력의 연대적 태도와 공동 노력이다. 사회적 대화와 합의, 공감과 연대 없는 비전과 가치가 얼마나 무기력한지를 우리는 좀더 분명히 새길 필요가 있다. 시민의 정치적 힘에 대한 강조 또한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소장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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