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18세기 초 영국에서 민관 합작의 거대한 사기 사건이 일어났다. 투기 과열로 인한 금융 공황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남해회사 버블’. 과학자 아이작 뉴턴을 비롯한 여러 석학들이 피해자로 연루되었을 만큼 파장이 큰 참사였다. 거품경제의 어원이 된 이 이름의 배경엔 1711년에 설립된 ‘남해회사’가 있었다. 국채를 통합하여 비용을 절감하려는 목적으로 세워진 주식회사였다.
‘남해’란 남아메리카 대륙과 주변의 바다를 가리키는 명칭이었다. 이 회사는 영국과 남아메리카 무역의 독점권을 부여받았는데, 이것이 사기인 이유는 당시 국제 정세를 살펴보면 자명했다. 남아메리카 대륙은 에스파냐의 식민지였고, 따라서 그곳과의 교역은 영국과 에스파냐의 외교관계가 정상일 경우에 가능했다. 당시 두 나라는 에스파냐 왕위 계승 문제를 두고 전쟁 중이었다. 교역이 성사되리라는 현실적인 전망은 없었다. 그럼에도 과도한 홍보와 대중의 투기 열풍으로 주가가 폭등했다.
능히 짐작이 가지만, 피해가 증폭되었던 까닭은 내부 거래와 불법적인 정보 유출로 인한 부패의 고리가 개재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있었다. 국채가 통합될 날짜를 미리 알아낸 사람들이 막대한 부당이득을 취했고, 그를 위해 정치인들에게 뇌물이 주어졌다. 특정 인물들이 회사의 돈을 이용하여 주식을 샀고, 그것을 담보로 더 많은 돈을 대출받아 더 많은 주식을 샀다. 단기간에 주가를 움직인 동력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교역은 없었다. 유일하게 교역이 가능한 분야는 노예무역이었는데 회사는 거기에서조차 이윤을 챙기지 못했다. 거품이 빠지고 주가가 폭락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패가망신했고, 국가 경제는 흔들렸다. 사후 감사로 의회는 청문회를 열어 부정행위에 연루된 정치가들을 징벌했다. 부당이득도 몰수되었다.
큰돈을 잃은 뉴턴은 이 한마디를 남겼다. “나는 별들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으나, 인간의 광기는 계산하지 못하겠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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