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
“박정희 프레임으로 미래를 운영했다가는 국가적 재앙을 맞을 것이다.” 필자가 작년 말 모 매체와의 인터뷰 때 한 말이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는 필자 나름의 이유를 말한 것이었는데, 그 말이 점점 더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아 필자가 생각해도 가끔은 섬뜩해진다. 이제 보니 대통령이 안 되었을 사람이 정보기관과 군의 선거 개입으로 대통령이 된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시작부터 박정희 프레임 아닌가.
필자는 경제학자로서 경제적인 재앙을 염려했다. 아버지의 ‘독재 프레임’만을 배운 박 대통령이 ‘산업화 시대’에 대한 향수와 박정희식 개발 정책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으로 미래 경제를 이끌어 나간다면, 그리고 박정희 명예 회복에 대한 집념으로 무리수를 둔다면 그 끝은 결국 파국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극히 도식적인 창조경제가 창조성을 발휘할 리 없다. 시작한 지 몇 달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공무원들은 창조성보다는 여기저기 창조라는 포장지를 두르기 바쁘다. 재벌에 창조경제를 구걸하고 있다.
행복기금, 행복주택, 행복연금이 난무하지만 ‘행복’은 이미 허울뿐인 정치적 접두사가 된 지 오래다. 돈 안 드는 전세, 돈 안 드는 대학, 여기저기 돈 안 든다는 정치구호는 난무하지만 돈 안 드는 것도 별로 없다. 목돈 안 드는 전세 정책은 이미 거짓으로 판명났고, 반값 등록금도 물 건너간 지 오래다.
노인연금과 4대 중증질환 의료보험 약속, ‘맞춤복지’도 돈 안 드는 쪽으로 맞추었으니 약속이 지켜질 리 없다.
‘경제 살리는 경제민주화’는 경제를 살리지도 민주화시키지도 못하고 있다. 재벌의 부당한 기득권을 다 용인해주고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재벌에 기대어 경제를 살리겠다니 애시당초 정치구호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래도 경제라도 살아나면 좋겠는데 경제는 살아날 기미를 안 보이고 서민 경제는 점점 더 어려워지기만 한다.
40년 전에 이미 사고의 성장이 끝난 사람들, 1930년대에 태어나서 60년대에 박정희 밑에서 공직을 시작했고 지금 80을 바라보는 속칭 ‘신386세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박정희의 딸 주변을 둘러싸고 40년 전 박정희 식으로 이 나라의 미래를 그린다고 한다. 거기에 시대를 넘나들며 5년짜리 정권의 입맛 맞추기에만 능숙한 공무원들이 색칠을 해댄다. 그런 경제정책이 무슨 창조성을 갖겠으며 어찌 20년, 30년 뒤 우리 국가경제를 먹여 살리겠는가.
정치적 재앙은 경제적 재앙보다 훨씬 빨리 오고 있다. 새마을운동이 국가 재건 운동으로 부활하고 유신 독재를 칭송하는 소리, 박정희를 찬양하는 기도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군, 정보기관, 경찰, 검찰은 공작정치와 강압통치의 수단이 된 것 같고, 여당 의원은 정권을 비판하는 국민들에게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협박을 서슴지 않는다. 헌법상 보장된 정당을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산시키겠다고 달려든다. 새누리당이 요즘 하는 짓을 보면 박정희 시대의 임명직 국회의원들인 유신정우회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박 대통령은 이제 선거에서 이겼으니 더는 가식의 외투를 입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완력으로 하면 되니까. 50~60대 이상 노년층의 정치적 지지가 아직 절대적이고 탄탄한데 뭐가 걱정이냐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제 내가 정권을 잡았으니 아버지의 한을 풀고 명예를 회복해야겠다는 거겠지. 그러나 박정희를 끄집어내는 것은 군대 용어로 박정희를 ‘확인사살’하는 것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나라경제도 함께 죽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50~60대 이상이 가진 산업화 시대의 향수와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현실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생긴 반작용의 결과일 뿐이다. 대통령 주변에서 박정희의 부활을 부추기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국물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박 대통령이 박정희를 끄집어낼수록 박정희가 허구라는 것이 증명될 테고, 박 대통령은 박정희를 증명하겠다는 초조한 마음에 더욱 무리수를 둘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심판은 두려운지 역사를 왜곡하려 든다. 박정희를 죽이고 박근혜는 죽고 국가는 재앙만 맞을 뿐이다.
이동걸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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