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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꽃니야 어서 와

등록 2013-11-08 19:59수정 2013-11-15 16:00

크리스마스이브가 출산 예정일입니다. 곧 저 신발을 신고 사진 찍을 날이 오겠죠?
크리스마스이브가 출산 예정일입니다. 곧 저 신발을 신고 사진 찍을 날이 오겠죠?
[토요판/가족] 가족관계 증명서
초음파 사진으로 널 처음 만났을 때 불과 5㎜밖에 되지 않는 네 몸속에 하트 모양 심장이 콩닥콩닥 뛰고 있었어. 어느새 여름이 지나고 가을바람이 부니 마음이 또 한결 뿌듯하고 설렌다. 배 안에 예쁜 생명이 들어 있단 게, 또 동그란 배에 가만히 손을 올리고 너에게 말을 걸 수 있단 게 마냥 좋아. 엄마는 원래 봄을 좋아했는데, 이제는 그 봄만큼이나 우리 아기가 태어날 때를 기다리는 지금 이 계절이 좋아. 우리 아기가 이 글을 읽을 만큼 자란다면, 그만큼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한테 얼마큼 또 추억이 쌓일까.

엄마가 좋아하는 <혼불>이란 소설에 ‘꽃니’라는 여자아이가 나와. 그 아이 엄마가 바느질하는 여종이라, 예쁜 천을 만지고 훌륭한 옷을 빚지만 그 옷을 입지는 못해. 그녀는 그런 자신 곁에 머무는 딸 ‘꽃니’에게 실컷 갖고 놀라고 옷 만들다 남은 조각 천을 작은 바구니에 모아 줘. 우리도 이들처럼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엄마와 딸이 되었으면 하는 맘으로 우리 아기를 꽃니로 부르기로 했단다.

얼마 전이 엄마, 아빠 결혼한 지 일 년 되는 날이었어. 실은 엄마는 그날 하트 모양으로 된 초콜릿 케이크도 준비하고, 서툰 솜씨로 우리 셋이 같이 입을 잠옷도 만들었어. 가끔은 치열하고, 가끔은 달콤하던 우리 일 년에 대해서 아빠랑 같이 ‘축하’하고 싶었어. 그런데 아빠는 우리 지금 잘 지내니까 특별한 인사와 선물이 없어도 된다며 꽃 한 송이도 안 주는 거 있지. 아빠 말 이해할 수 있었지만, 눈물은 눈물대로 자꾸 나고 아쉽고 서운했어. 엄마에게는 엄마의 꿈이 있듯이 아빠에게는 아빠의 꿈이 있을 텐데 그게 서로에게 얼마나 간절한지 우리가 종종 잊는 거 같아. 아빠의 친구, 아빠의 꿈, 아빠의 일상, 아빠의 사랑을 온전히 알고 이해하는 일, 실은 엄마도 잘 못하면서 아빠에겐 그런 걸 바라. 아직 우리 초보 부부지?

이렇게 아직 엄마 마음은 어리지만 맑은 눈으로 널 대하고 건강한 신념으로 널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 부모로서 널 사랑하는 방법을 깨닫기 위해서 천천히 오래 공부할 거야. 너 태어나서 한 100일쯤 지나면 그땐, 봄꽃이 환하겠다. 그럼 엄마는 널 안고 밖으로 나가서 아빠한테 꽃잎 흩날려 달라고 부탁할 거야. 아빠가 꽃가지를 흔들고, 흩날린 꽃잎 하나가 우리 아기 볼에 닿으면 “아이고, 이뻐라” 하면서 네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려 줄게. 우리 아기가 강만큼 맑고 순한 아이였으면 해. 또 너로 인해서 엄마, 아빠가 서로의 삶과 생각을 더욱 존중할 수 있는 더 좋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안녕.

널 기다리는 엄마가


▶ 가족들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속 얘기를 사진과 함께 편지(원고지 6장 분량)로 적어gajok@hani.co.kr로 보내주세요. 채택된 사연에 대해서는 원고료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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