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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서울시청사 디자인, 되게 애틋하고 복잡해

등록 2013-11-08 19:32수정 2015-12-22 15:25

다큐영화 <말하는 건축 시티:홀>을 연출한 정재은 영화감독을 10월3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한옥카페에서 만났다. 정 감독은 다큐의 매력에 푹 빠진 듯했다. 그는 “다큐는 단순히 한번 소비되고 즐기는 영화가 아니다. 기록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다큐영화 <말하는 건축 시티:홀>을 연출한 정재은 영화감독을 10월3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한옥카페에서 만났다. 정 감독은 다큐의 매력에 푹 빠진 듯했다. 그는 “다큐는 단순히 한번 소비되고 즐기는 영화가 아니다. 기록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말하는 건축 시티:홀’ 정재은 감독
 10월의 마지막 일요일, 서울 강남의 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말하는 건축 시티:홀>을 봤다. 즐비한 상업영화를 제쳐두고 다큐멘터리를 보겠다고 찾아온 관객들에게 묘한 동지애가 느껴졌다. 그들도 그랬을까, 앞 열의 관객 몇몇도 자꾸 고개를 돌려 어떤 이들이 왔나 둘러보는 눈치였다. 영화가 시작됐다. 서울의 하늘, 높고 낮은 스카이라인을 따라 주요 건물들이 소개되고 마지막으로 영화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낯선 전학생처럼 서 있는 서울시 시청사…. 당혹스러운 영화였다. 영화는 시청사 디자인 선정을 둘러싼 논란을 개괄하고, 대형 시공사가 설계부터 건축까지 일괄적으로 맡아 계약하는 턴키(Turn-key)방식으로 인한 상업주의, 관료주의 폐해를 짚는다. 그러나 주된 내용은 신청사 내부 ‘다목적홀’의 설계변경을 둘러싸고 건축 실무자들이 벌이는 갈등과 긴장에 있다. 설계자인 유걸 건축가 팀과 발주처인 서울시 담당공무원, 시공사인 삼성물산 설계팀, 그리고 삼성물산의 하청을 받은 인테리어업체 간의 팽팽한 긴장 관계, 그러나 어렵게 완공된 시청사가 “광복 이후 최악의 건축물 1위”로 꼽히고 “서울의 흉물”이라는 비난에 직면하자 그들이 동시에 느끼는 허탈감과 묘한 동류의식….

 영화가 끝났는데도 관객들은 바로 일어서질 못하고 주춤거렸다. 그들도 나처럼 “이게 다야?” 하는 기분이었을까, 더 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는데 못 듣고 끝나버린 듯한 찜찜함이랄까. 이 영화에 대해 10점 만점에 6점을 준 한 누리꾼의 영화평은, 그런 관객들의 당혹스러움을 대변한다. “나쁘게 말하면, 최악의 건축물로 평가받는 서울 신청사 건물이 왜 이렇게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변명의 영화’일 것이고 (만일 그런 의도가) 아니라면 ‘일반인이 볼 수 없는 시각’에서 만든 다큐일 것이다.”

 
※ 이미지를 누르시면 확대됩니다..
서울시 신청사 못지않게, 서울시 신청사에 대한 영화 <말하는 건축 시티:홀>의 첫인상은 내게 그렇게 낯설고 난해했다. 나흘 뒤, 이 영화를 만든 정재은(44) 감독을 경복궁 옆 한 찻집에서 만났다. 2001년 <고양이를 부탁해>로 대한민국 영화대상 신인감독상을 받았던 정재은은, 지난해 고 정기용 건축가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를 들고 돌아왔다. 다큐멘터리 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4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은 성공작이었다. 이번에 개봉된 <말하는 건축 시티:홀>은 건축시리즈 2탄인 셈이다.

내가 ‘유걸 건축가’의 입장이 된다면

 -이번 영화에 대한 관객들 반응은 어떤가?

 “개봉 일주일이 지났는데 관객의 반응이 너무 없어 걱정이다.”

 -반응이 없다는 건 관객 수가 적다는 뜻인가, 관객들 평가가 박하다는 뜻인가?

 “감독인 나에겐 (사람들이) 싫단 말을 못하고 재미없단 말도 못한다. 그래서 직접적으로 알긴 어렵고 주로 에스엔에스(SNS)를 통해서 확인하게 된다. 영화를 보고 나서 할 말이 많고 뚜렷하면 즉자적으로 반응이 올라오는데… 아직은 이 영화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관객들이) 좀 힘들어하는 것 같고, 그래서 ‘리액션’이 없는 것 같다. 영화가 관객들이 원했던 내용과 좀 다른 거지. 서울시청이라고 하면 고발적인 다큐멘터리일 거라 생각하고 극장에 왔는데 그렇지 않다 보니 관객들 입장에서는 뭘 보라는 건지 혼란스럽고, 정리가 안 된 것 같단 느낌이 들었을 테고….”

 차분하고 냉정한 분석이었다. 짧은 커트머리에 둥근 뿔테안경, 나지막하면서 감정의 동요를 잘 드러내지 않는 절제된 말투는 그를 영화감독이기보다는 단정한 대학원생처럼 보이게 했다. <두 개의 문>이나 <천안함 프로젝트>같이 강렬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질 것이라 지레짐작했던 관객들이 느꼈을 당혹스러움을, 그는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감독의 기획 의도는 어떤 것이었나?

 “두 가지다. 하나는 신청사의 전사(前史)로 현재 청사의 디자인이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되었는지 보겠다, 또 하나는 공사가 진행되면서 어떻게 건축물로 완성되는가를 그리겠다는 것.”

 -시청사의 사업자 선정이나 건축 과정의 문제를 파헤치는 다큐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단 뜻인가?

 “그렇다. 나는 저널리즘을 공부하지도 않았고 사회 진실이나 정의에 대해 큰 감각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 이 프로젝트 전체를 놓고 보면 분명 잘못한 사람이 있겠지만, 내가 입증하긴 어렵다. 고발을 하려면 핵심을 제대로 건드려야 하지 않나. 그건 사회부 기자나 시청 출입 기자들이 데이터를 가지고 해야지,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나는 다큐 안에 내레이션을 쓰거나 강한 주장을 내놓고 설득하기보다는, 극영화처럼 ‘이야기’를 펼쳐놓고 다양한 등장인물을 통해 사실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에 관심이 있다.”

고발적 다큐멘터리라 생각하고
극장 온 관객들 혼란스러움 이해
고발은 나의 영역이 아니다
‘이야기’ 펼쳐놓고 등장인물 통해
사실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에 관심

서울시청사는 대단히 복잡
오세훈 한 사람 잘못이라면
마음이 편할 수는 있겠지만
이 모든 것은 수백개 위원회가
활동하고 선택한 복합적 결과

 사실 그대로를 담담하게 보여주는 것도 호락호락한 일은 아니었다. 7년여에 걸쳐 3천억원을 들인 시청사의 건축 과정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2006년 ‘디자인 서울’을 내건 오세훈 전 시장의 전격적인 추진에 의해 삼성물산과 삼우가 주축이 된 컨소시엄의 ‘항아리 모양’안이 신청사 공모전에서 채택되었다. 그러나 충분한 타당성 조사와 여론 수렴을 거치지 않은 설계안은 문화재위원회와 여론의 반대에 부딪혔고, 결국 권위있는 초청작가 5인의 아이디어를 받는다는 명목으로 2년 뒤인 2008년 사실상의 설계안 재심사에 들어갔다. 마침내 현재의 시청사 모습인 유걸 건축가 안이 채택되었지만, 세부설계와 시공의 모든 권한과 책임은 이미 계약을 맺은 삼성 컨소시엄에 주어진 채였다. 건축 현장에서 배제되었던 유걸이, ‘총괄 디자이너’라는 어정쩡한 직함으로 공사 현장에 합류하게 된 것은 이미 골조공사가 마무리된 공사 막바지.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영화감독 정재은의 마음을 잡아끈 것은 바로 이 대목이었다.

 -유걸 건축가의 입장에 감정이입을 한 건가?

 “건축과 영화는 어떤 면에서 참 비슷하다. 내가 쓴 시나리오를 받아서 다른 사람이 제작을 하겠다고 한다. 그것도 한 달 만에 쓴 시나리오를, 내가 보기에도 완벽하지 않은 시나리오로 3천억을 들여서 영화를 찍겠다고 가정해 보자. 난 전혀 참여할 수 없고… 스태프들은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그런데 나중에 영화가 거의 완성이 되어서 개봉을 앞두고 나한테 들어오라고 했다면…난 들어갈 수 있을까? 이렇게 영화로 환치해서 생각하니 이해가 쉽더라.”

 영화에서 유걸은 시청사가 “아이들이 신기해하며 이것저것 만지고 뛰어노는 공간”이 되는 걸 볼 때 제일 흐뭇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시청사가 정말 시민들의 편안한 공간이 되고 있는지는 아직 미지수다. 햇빛을 되쏘는 1604장의 삼각형 유리로 마감된 외관은 밀폐된 우주선처럼 완강하다. 시청 업무에 필요한 사무 공간이 여전히 부족해 인근 세 개의 건물에 별관을 운용해야 하는 현실도, 신청사 건축의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

 -당신은 <씨네21>과 한 인터뷰에서 “다큐를 찍는 것은 대상을 이해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완용에 대한 다큐를 만든다고 해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나도 실은 전직 다큐작가인데(웃음) 난 ‘이해’하는 것과 ‘옹호’하는 건 다르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1년 동안 현장 실무자들과 함께하다 보니 그들에게 정서적으로 유착되고 동화된 건 아닌가. 열심히 일한 실무자들이 시청사에 대한 혹평에 의기소침해지는 모습은 연민을 자아낸다.

 “내가 옹호하는 것처럼 보였나?”

 -난 그렇게 느꼈다. “이렇게 깊은 뜻을 담고 만든 것이니 함부로 비난하지 마라. 얼마나 어려운 시공을 피땀 흘려 한 건데, 그 공을 몰라 주냐”는 메시지를 영화는 던지는 것 같다. 시공자와 설계자의 시선에, 사람들의 인식을 끼워 맞출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서울시청을 옹호하고 사랑하자고 해서 나한테 남는 게 뭐 있겠나. 내 의도는 그런 게 아니었다. 서울시청은 대단히 복잡하다. ‘어느 힘있는 사람이 자기 좋아하는 안을 뽑아서 시청사를 지었겠지…’ 대부분의 시민들은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한다. 너무나 시민사회적이지 못한 발상이다. 내가 관찰한 바로는, 서울시청사는 수백 개의 위원회의 (활동) 결과다. 오세훈의 ‘디자인 서울’이니 ‘랜드마크’니 하는 말들이 영향을 미쳤겠지만 오세훈 혼자 ‘이걸로 해!” 이럴 수는 없는, 복잡한 시민사회적 지점에 우리는 도달해 있다. 난 복잡다단한 이해관계와 입장의 충돌을 보여주고 싶었다. 의견의 차이로 7년이 걸렸는데 그보다 더 걸린들 어떤가. 오세훈 한 사람의 잘못이라고 보면 마음 편할 수는 있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은 수많은 위원회들의 복합적인 선택의 결과다.”

2021년, <고양이를 부탁해> 배우와 2편 제작

 -제목이 <말하는 건축 시티:홀>인데, 시청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말이 뭔가?

 “시티홀이 무슨 말을 할까…. 그런 질문을 받아 본 적이 없어서… (잠시 침묵) 글쎄, 이런 말을 할 것 같다. 황지우의 시처럼 ‘나는 너다!’ 네가 나를 볼 때 굉장히 다르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나(시청)는 너(시민)의 반영이고 네가 사는 사회의 반영이다.”

 정재은이 왜 제목에 ‘시티:홀’이라고, 단어 사이에 동격을 뜻하는 ‘:’을 썼는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재은에게 시티(서울시)는 하나의 거대한 홀(강당)이다. 도시는 각각의 빌딩으로 분할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건물과 도로와 풍경과 하늘과 사람이 어우러져서 하나의 거대한 ‘공유공간’을 이룬다. 그 공간의 주인은 시민이고 공공건축은 시민을 위한 예술품이자 실용품이며 시민의식의 반영이다. 그 공간 안에서 무수한 목소리와 다양한 요구들이 매일 매 시각 부딪치며 공명하고 충돌한다. 그 충돌은 번거롭지만, 정당하며 유용하고 소중하다.

 -전작인 <말하는 건축가>의 주인공 고 정기용 선생은 “건축은 숭배의 대상이 아니고 건축가가 명품을 짓겠다는 자존심을 내세우면 안 된다. 건축은 사람들의 삶을 돕고 봉사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철학을 영화에 대입해 보면 어떤가. 영화는 관객들의 삶에 필요한 위안이나 카타르시스를 주는 게 맞나, 아니면 새로운 지적·정서적 자극을 주고 불편한 고민을 던지는 게 옳은가?

 “그 문제에 대해선 아직 탐구중이다. 블록버스터나 상업영화가 무가치하거나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홍상수 감독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모든 경우가 다양하게 공존하는 것인데. 지금은 그런 다양성이 무너져서 문제다.”

 상업영화와 예술영화 사이에서 정재은 감독이 내놓을 앞으로의 영화는 어떤 모습일까? 우선, 건축시리즈의 후속작으로 ‘외국 건축가들이 한국에 남긴 건축물’을 둘러보고 싶다고 그는 말한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처럼 외국인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들이 있는데 어떤 경우는 건축가 자신도 자기 것이 아니라고 손을 떼버린 경우도 있어, 흥미로운 사례들이 많다고. 한편으론 공상과학 호러 영화를 만들고 싶은 열망도 강하다. “공수표가 될까봐 내용을 미리 공개할 수는 없지만” 써놓은 시나리오도 몇 편 있다. <고양이를 부탁해> 20주년이 되는 2021년엔 본편의 배우들과 2편을 만들기로 약속도 해 놨다. <비포 선라이즈>(1995)의 이선 호크와 줄리 델피가 십년 단위로 연작을 찍은 것처럼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갓 스물이었던 배두나, 이요원, 옥지영이 40대 아줌마로 분한 모습을 다시 영화로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정재은은 마틴 스코세이지나 빔 벤더스처럼 극영화와 다큐를 오가는 감독이 되고 싶다고 했다.

 -언제부터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결심한 건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1기로 입학할 당시 이미 20대 후반이었는데, 그 이전엔 무얼 했나?

 “어려서부터 영화를 엄청 좋아했지만 내가 직접 만들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못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와이엠시에이(YMCA) 건전비디오를 위한 시민의 모임’에서 일을 했는데 청소년 캠프에 자원봉사를 하면서 초등학생하고 호러영화를 만들었다가 ‘왜 애들하고 그런 비교육적인 걸 만드냐’고 질책을 받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신문에 난 한예종 모집광고를 보게 되었다. 내가 원래 소신이 뚜렷하거나 의지가 강한 사람이기보다는 우울하고 자폐적인 성향이라 입학한 뒤에도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학교에서의 전공도 (연출이 아닌) 편집이었다.”

어떨 땐 너무 좋고 어떨 땐 너무 싫은 신청사

 졸업작품인 <둘의 밤>(1999)이 영상원 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면서 슬며시 자신감이 생겼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감독이 돼도 좋겠구나” 하는 생각은 그때부터였다. 2001년 데뷔작 <고양이를 부탁해>가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창작의 즐거움도 알게 되고” 여러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사회성도 터득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 계획했던 영화의 펀딩이 좌절되면서 건축시리즈의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돌아오기까지 공백이 길었다. 여성 감독이란 점이 핸디캡이 되었을까?

 -지난 20년간 전문직 분야의 여성 진출이 두드러진 데 비해 영화계 여성 감독의 성장은 부진한 편이다. 이유가 뭐라고 보나?

 “끝까지 하는 여성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산업에선 30대부터 40~50대 중반이 피크타임인데 그 시간이 여성으로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기도 하니깐. 끝까지 전적으로 영화에 매달리면 어떻게든 된다고 보는데, 아이 낳고 기르다 보니 그 기간을 버티기가 힘들다. 더구나 여성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면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는 경우가 많은데 여자 주인공은 돈이 안 된다고 투자자들이 싫어한다.”

 -여성이 주인공이면 흥행이 안 된다고?

 “여자가 나와서 돈 되는 경우가 드물다. <써니>가 아주 예외적인 경우고. 한국 영화는 거친 남자들의 마초이즘에 주목한다. 세고 강한 걸 보여주는 게 상업적으로 유리하니까. 나도 세고 강한 시나리오를 쓰려고 노력은 하는데… 결국은 창작자로서 부딪치는 문제다. 끝까지 계속할 의지가 있는가, 끈기 문제라고 본다.”

 시종일관 정재은은 환경이나 구조를 비판하고 공격하기보다는, 상황에 대한 성실한 이해와 개인의 열정에서 답을 찾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런데 정말 궁금하다. 당신은 솔직히, 시청사 디자인이 맘에 드나?

 “되게 애틋하고 복잡하다….”

 -그 말이 더 복잡한데.(웃음)

 “내가 몇 년간 사랑한 사람에 대해 단순하게 얘기할 수 있겠나. 그 사람에 대해 알려고 탐구하고 보낸 시간이 있는데. 단순하게 좋다 싫다, 말하기 어렵다. 난 밤에 신청사에 불이 켜져 있을 때가 좋다. 수직의 높은 빌딩이 아니어서 좋고, 내부가 한눈에 보여서 좋고, 광장과 어우러져서 좋다. 그런데 어떨 땐 너무 싫다. 그 광장을 경찰차가 빙 둘러싸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시위하고, 그때 보이는 시청은 정말 싫다. 사람들이 편안하게 광장에서 무언가를 할 땐 좋은데, 권력에 의해 광장이 틀어막혀 있을 때 그 배경이 되는 시청은 정말 싫다.”

 정재은 감독의 말을 들으며 영화 <시네마 천국>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낡고 색 바랜 시골 극장이 무너질 때, 동네 사람들은 오랜 친구를 떠나보내듯 눈물을 흘렸다. 애틋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깃든 공간, 그걸 건축효용과 설계미학의 잣대만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건축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그 안팎에 깃든 사람들의 삶이다.

 녹취·정리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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