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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강명구 칼럼] 아시아를 보는 새로운 시선

등록 2013-11-03 19:10수정 2013-11-03 23:43

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팔레스타인 출신 에드워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이란 책을 통해 서구의 문학과 예술이 동양 사회를 어떻게 왜곡해 왔는지를 밝혔다. 문학과 예술, 학문의 이름으로 아시아 사회를 왜곡한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사이드의 비판은 지금 읽어도 통렬하다. 사이드의 저술이 나온 지 3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 아시아인들은 서구가 만들어낸 편견과 왜곡을 벗어나서 스스로 아시아를 바라보는 시선을 만들어내기는 한 것일까.

이렇게 물어보자. 우리 한국인들에게 인도, 중동, 동남아시아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상당 부분 공통점이 있을 것이다. 힌두교·이슬람교·불교 사원, 타지마할과 뭄바이의 빈곤한 거리 장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 그리고 히잡과 이슬람 지하드 등등. 발리와 방콕 거리를 배회하는 관광객. 아니면 새로운 수출시장으로 인도 혹은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등. “우리나라 60년대 같아요.” “여전히 6·25 직후 서울 모습 같아요.” 몽골과 동남아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무심코 하는 말들. 티베트와 인도에 대한 여행 사진이 보여주는 이미지들. 라마교의 어린 승려, 사막과 초원을 이동하는 중앙아시아의 유목민, 사랑과 낭만이 넘치는 신혼여행지로서 발리·푸껫 등 동남아 해변의 휴양지들.

‘과거로 간 미래’라든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사는 삶’과 같은 시선은 서구가 만든 오리엔탈리즘이 우리 자신의 아시아에 대한 자기인식에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동남아시아, 서아시아, 우리가 속한 동아시아 안의 중국·일본·몽골, 중앙아시아 등에 대한 고정관념은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대단히 부분적이고 단편적인 경험에 근거해 있기에 불완전하다. 또한 다른 인종과 종교, 사람살이에 대한 단편적이고 획일적인 인식을 드러낸다. 이건 단순히 이미지·편견·인식의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정치와 경제 갈등의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가장 좋은 사례가 중국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이다. 중국은 한국의 입장에서 미국, 일본을 합친 교역량을 훨씬 웃도는 최대 교역 상대국이다. 그러나 한국 언론의 중국 보도를 보노라면, 아전인수와 지극히 파편적인 사실과 사건들로 넘쳐난다. 중국에는 달걀에도 짝퉁이 있다는 조롱, 납 성분이 묻어 나오는 수산물, 어린아이를 위협하는 분유파동 등등. 원산지 중국산 표시가 되면 대부분 농산물 가격이 반으로 뚝 떨어진다. 정말 중국의 농산물, 수산물은 모두 그렇게 형편없고, 위험하고 오염된 것일까. 중국 내부에서도 식품 안전이 문제인 것은 틀림없지만, 왜 한국의 9시 뉴스는 중국의 대도시, 중소도시 어디에 가도 널려 있는 값도 싸고 싱싱한 채소와 과일들은 왜 수입하지 않느냐고 묻지 않는 것일까.

중국사회과학원은 중앙정부 국무원 산하에 있는 직할 싱크탱크로 유명하다. 베이징대, 칭화대 못지않은 규모와 예산을 사용하는 사회과학원에서는 매년 ‘청서’ 시리즈를 300여권씩 발행한다. 연감과 이슈보고서 중간쯤의 형태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목을 보면 <중국범죄문제 2012> <중국여론동향 2012> <베이징주택문제 2012>와 같은 정치사회, 경제문화 등 사회 전반의 문제를 다룬다. 이런 시리즈를 매년 300여종씩 발간하고, 중요한 책들은 100여 차례에 걸쳐 공개토론회를 연다. 중국 중앙정부의 공식 문건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책들이고, 이걸 보면 누가 어떤 문제의 전문가이고, 중국 정부가 어떤 정책과 시야를 가지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국내에 이런 동향을 알려주고, 공유하는 언론도 학술활동도 내가 아는 한 아직 없다.

‘아시아의 세기’라는 말은 1988년 덩샤오핑(등소평)과 라지브 간디 총리가 만났을 때 사용했다고 하는 게 정설로 되어 있다. 2011년 아시아개발은행은 2050년에 아시아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명목이 아니라 구매력 지수로 환산했을 때 유럽 수준에 도달할 것이고, 300년 전 아시아가 가졌던 경제력을 회복할 것이라 예측했다. 만일 이 예측이 맞는다면 아시아의 세기라는 말이 나오고 62년 걸린 셈이다. 그런데 아시아인들은 여전히 서구가 만들어준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닐까. 자신에 대해 스스로를 인식하고 성찰하지 않는 사람이 아시아의 세기를 운위할 수는 있는 것일까.

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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