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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그들 속의 나, 내 안의 그들

등록 2013-10-23 19:05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켄 로치의 영화는 관객의 심중을 파고들며 쉽게 사라지지 않는 여운을 남긴다. 대표적인 좌파 감독으로서 약자의 처지를 대변하며 현실의 비루함을 넘어설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에게 영화란 인간이 자신의 세계와 갖는 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사회적 관계에서 벗어난 추상적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그 관계에서 사람은 어느 한편에 서게 되며, 로치는 극중 인물에게 어느 편이냐고 묻는다. 그것은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대답은 어렵다. 세상은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좌우의 이념 대립은 방법의 차이를 둔 분열로 이어진다. 로치는 그 가지치기를 낱낱이 추적한다.

북아일랜드 독립전쟁을 다룬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서는 독립의 방법에 대한 차이가 형으로 하여금 아우를 처형하도록 만든다. 식민지를 겪었던 국민이라면 완전한 감정이입이 가능한 장면이다. 스페인 내전을 다룬 <토지와 자유>에서는 파시즘에 대항하는 세력인 스탈린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 사이에서 총격전이 일어난다. 이념에 의한 내전을 겪은 우리에겐 주인공의 방황과 갈등이 남의 일이 아니다.

로치는 대본을 부분적으로만 배우들에게 나눠줌으로써 상황에 스스로 몰입하여 배역과 혼연일체가 되도록 만든다. 배우는 계속하여 어느 편에 서야 할지 결정하게 되고, 그 선택의 기로에서 갖게 되는 고민은 관객의 몫이 된다. 궁극적으로, 국가와 같은 권력의 틀을 빌려 개혁을 추구할 것인가, 개개인의 숭고한 이상에 의존해야 할 것인가.

그는 현실이 타락의 악순환임을 직시하면서도 낙관적인 전망을 견지한다. 제자리에서 싸우기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투쟁의 탄력이 공유되는 연대를 위해 그는 영화를 만들어왔다. “이것은 우리의 세계다. 나는 그들의 일부이고, 그들은 나의 일부이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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