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기원전 4세기 전성기 아테네에 아리스토텔레스를 추종하는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방이 아니라 지붕이 있는 보도인 주랑에서 모임을 가졌다 하여 처음엔 ‘주랑학파’라 불렸으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자들과 함께 이곳저곳 산책을 하며 앎을 전수했다 하여 스승의 사후에 ‘소요학파’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아테네 시민만 재산을 소유할 수 있었던 시절, 그 시민이 아니었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어쩔 수 없이 택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산책하고 소요하는 일에서 삶의 여유를 떠올릴 수 있듯, 이 학파는 ‘학파’라는 딱딱한 명칭을 붙일 만큼 형식적인 모임이 아니었다. 정해진 교육과정이나 학생들에 대한 과제는 물론 수업료도 없었다. 최소한 아리스토텔레스가 생존했을 당시까지는 학파를 대표하는 원칙 같은 것도 없었다. 이 모임에선 참여자 모두가 동등한 협력자였다.
스승의 사망 이후 이 학파의 운명은 부침을 겪었다. 어쨌든 후대의 추종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을 보존하려 온 힘을 기울였다. 결국 서유럽에서는 이 학파가 자취를 감추었으나, 그들의 기본적인 취지는 이슬람 지식인들에 의해 계승되었다. 훗날 중세의 전성기에 이슬람 지식인들이 보존한 지식이 서유럽으로 전파되어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스콜라 철학으로 집대성되었다는 사실에 이 학파의 큰 보람이 있을 것이다.
소요하며 제자들에게 건넨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은 ‘덕’에 관한 것이 많다. 그것은 플라톤의 경우처럼 순수한 지식의 형태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습관에 바탕을 둔 실천적 규범이었다. 그러한 규범 중 으뜸이 중용이었다. 비겁함과 무모함 사이에서, 감각적 쾌락의 향유와 그것의 전면적인 회피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덕이었다.
우리의 위정자들도 걷기는 좋아하는 듯하다. 단, 골프장에서만. 극도로 편향된 사고로 보건대 그들의 정신은 발만큼도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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