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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 칼럼] 새로운 태평양전쟁과 한국

등록 2013-10-16 19:24

김지석 논설위원
김지석 논설위원
서태평양 지역의 정세가 큰 전환기를 맞고 있다. 이 지역은 동서로는 하와이에서 동부 인도양까지, 남북으로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러시아 동쪽까지 40여개 나라와 해역을 포괄한다. 과거 미국과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벌였고, 지금 미국 태평양통합군사령부가 작전구역으로 삼고 있는 지역과 거의 일치한다.

변화의 주된 동력은 중국과 미국·일본이다. 대국을 자처하는 중국은 서태평양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키우는 것을 국가전략의 하나로 삼는다. 이 지역 나라로선 2차대전 이후 처음으로 항공모함을 만들어 띄우고 남중국해 섬들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강화한다. 무엇보다 중동과 아프리카에 대한 자원의존도가 높아지는 중국으로서는 인도양을 거쳐 남중국해·동중국해로 이어지는 해상 통행로를 안전하게 확보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다.

미국은 이를 자신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본다. 최근 몇 년 사이 선언한 ‘아시아 중시’ ‘아시아 재균형’ 정책은 일종의 대중국 포위망 구축 시도다. 문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재정 능력이다. 지난 3일 미-일 안전보장협의위원회에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적극 지지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한 것은 일본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 미국의 처지를 보여준다. 집단적 자위권은 선제공격까지 포함해 미군이 작전지역으로 삼는 모든 곳에서 일본도 전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지향한다. 미국은 미-일 동맹을 통해 일본과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동시에 일본의 독자적인 군사행동을 억제해왔으나 이제 일본의 족쇄를 풀어주고 있다. 1960년 미-일 안보조약이 체결된 이후 최대의 변화다.

일본은 커가는 중국에 대한 두려움뿐만 아니라 미국이 결국 자신을 버리고 중국과 손잡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함께 갖고 있다. 아베 신조 정권이 보통국가화라는 명분으로 군비를 확충하고 집단적 자위권에 공을 들이는 데는 미국이 대중국 전선에서 이탈하지 못하도록 묶어두겠다는 뜻이 깔려 있다.

중국과 미국·일본이 맞서는 새로운 형태의 태평양전쟁은 앞으로 더 치열해질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6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신형대국관계 구축을 요구했으나 미국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미국 안에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처럼 대중 협력을 중시하는 현실주의자도 적지 않지만 미국이 스스로 힘의 사용을 억제할 가능성은 적다. 종합 국력에서 미국의 절반을 넘어섰다고 생각하는 중국이 자신의 앞마당으로 여기는 곳에서 후퇴하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우리나라는 이 전쟁의 앞날에 영향을 끼칠 핵심 변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위치에 대한 판단이다. 14일 김재윤 민주당 의원이 내놓은 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72.2%가 ‘일본은 우리나라의 동맹국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정부 대응 방향에서도 75.5%가 ‘일본 군사력이 아시아 평화를 깨뜨리기 때문에 반대해야 한다’는 쪽을 택했다. 일본을 원초적으로 불신하는 심리는 이 지역에서 독특한 것이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고 미국·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조정력을 높일 수 있는 근거의 하나이기도 하다.

한반도를 넘어 폭넓게 바라보는 시야와 자주적인 태도도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인들은 집단적 자위권과 관련해 ‘한국이 전시작전권을 환수해 결정권을 갖는다면 일본군이 한국 땅에 상륙할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으냐’고 묻는다. 타당한 얘기다. 또 일본인들은 ‘유사시에 한국을 도울 수도 있는데 왜 한국인들이 반대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여기에 답하려면 역사 문제와 안보가 별개일 수 없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새 태평양전쟁이 불러오는 긴장을 평화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구상을 갖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비롯해 그런 구상을 실천할 수 있는 지정학적 위상과 역량을 갖추고 있다. 당장 경계해야 할 것은 미-일 군사일체화 구도에 슬며시 통합돼 새 태평양전쟁을 더 격화시키는 일이다. 최근 정부가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체제와 미·일 동북아 미사일방어(MD) 체제의 연계를 강화하는 움직임 등을 보이는 것은 그런 면에서 잘못이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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